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 "초저출산에 국가 소멸 위기…미래 암울해도 바꿀 수 있어"

입력 2023-06-01 18:27   수정 2023-09-21 09:15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을 기록했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투자해 출산율을 높이려고 했지만 2006년 1.1명대이던 출산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인구정책을 통한 출산율 반등에 실패하면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저출산 국가가 됐다.

고령화도 저출산만큼이나 심각하다. 1980년대 이전 3~4%에 그치던 노인 인구 비중은 2020년 15.7%로 증가했다. 2050년에는 40%를 돌파해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인구 변동은 생활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인구 구조가 사회보장, 일자리, 안보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연금·교육개혁에 나서는 기저에도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문제가 깔려 있다. 노동개혁은 감소하는 생산연령인구가 노인 인구를 효과적으로 부양하기 위한 노동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연금개혁도 저출산·고령화의 필연적 결과인 연금 고갈 사태를 막기 위해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인구 구조에 적응하는 형태의 인구 정책이다. 이 정책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꾀하는 인구 감소 ‘완화’ 정책과 결합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인구 적응에만 집중하면 현재 인구 추세로 예측할 수 있는 미래는 ‘정해진 미래’가 된다. 합계출산율 0.78명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가 한국의 정해진 미래라면 너무나 암울하다. 인구추계 시나리오에 따르면 한국은 향후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적 붕괴를 겪은 뒤 소멸한다.

하지만 인구는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거나 이민 확대를 통해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암울한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그 수준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만의 인구 해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양육부담 줄이는 것만으론 저출산 해결 못해…가족 가치 회복해야"
일본은 세계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 중 하나다. 1995년 가장 먼저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7% 이상)가 됐고, 2006년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들어갔다. 80대 부모와 50대 미혼 자녀가 함께 사는 ‘5080 현상’,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빈집만 남은 시골 마을 등은 저출산·고령화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일본보다 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을 것으로 예측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일본(1.3명)의 60% 수준이다. 고령 인구 비중은 17.5%로 일본(29.9%)보다 낮지만 증가 속도가 심상찮다. 2070년이 되면 46.4%까지 높아져 일본(38.7%)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된다.

생산연령인구보다 고령인구가 더 많아지면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들이 붕괴한다. 대표적인 게 연금이다.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에는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연금을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급 수급자(고령층)는 생산연령인구가 낸 보험료로 연금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젊은 세대의 경우 나중에 자신이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보험료를 내라고 하면 불만 없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령인구(6~21세) 변동에 따른 교육 붕괴는 더욱 극적일 것이다. 학령인구는 1980년 1440만 명에서 2023년 726만 명으로 50% 감소했다. 2033년에는 532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초·중·고등학교 폐교로 이어지고 있다. 초·중등 교사 채용도 감소세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한 대학의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해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이 인구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대책을 마련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2006년부터 16년간 280조원을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투입했다.

문제는 이 대책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6년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하락했다. 그간의 대책이 출산율을 늘리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일·가정 양립정책 중심의 출산장려책이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 환경을 마련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란 생각에서 도입한 정책이지만 개인주의 전통의 북유럽과 서유럽을 제외하면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 등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특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가정 양립정책은 인구학에서 저출산 현상을 설명해온 제2차 인구변천 이론(SDT·Second Demographic Theory)과 젠더평등(성평등) 이론에서 출발한다. 2차 인구변천 이론은 전통적 가족 이념과 성적 도덕에 대항해 개인의 자율성과 자아실현을 우선시하면서 저출산이 나타난다고 본다. 젠더평등 이론은 가족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가부장적 요소를 배제한다. 스웨덴식 가족이 대표 사례다.

젠더혁명은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째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는 단계, 둘째는 남성과 여성이 집안일과 자녀 돌봄을 동등하게 분담하는 단계다. 출산율 반등이 이뤄지는 것은 두 번째 단계다.

그런데 한국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높아졌지만 가사 노동을 여성이 떠맡는 식의 가족문화가 여전히 강하다. 즉 전반부 혁명은 성공했지만 후반부는 실패했다.

게리 베커의 경제학 출산이론에 따르면 서구사회에서 자녀는 부모에게 경제적 이해로 환산할 수 있는 ‘재화’ 혹은 ‘소비재’로 간주한다. 출산과 자녀 양육에 따른 기회비용을 보상해주면 출산을 늘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가정 양립정책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적합한 출산장려책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자녀는 경제적 이해로 환산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이다. 출산의 본질적 동기는 출산과 양육에서 나오는 부모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다. 일·가정 양립정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오직 일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여성의 가족 내 역할, 즉 ‘어머니’가 됨으로써 획득하는 정체성과 자부심은 폄훼된다. 이는 혼인율과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지기 쉽다.

서구 이론에 근거한 정부의 인구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결혼과 출산의 ‘특권화’ 현상이다. 사라 맥란은 2004년 미국인구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결혼과 출산의 특권화 현상이 세계화, 신자유주의, 복지정책,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골드미스 여성이 결혼과 자녀 출산을 회피하는 경향이 높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골드미스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보다 결혼과 출산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도 21세기 들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직적 일·가정 양립정책은 특권화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육아휴직자의 3분의 2는 공기업, 대기업 등 고소득 일자리에 집중돼 있다.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여성 대부분은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

조부모의 조력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화된다. 부유한 조부모일수록 육아를 돕는 사례가 많다. 부유한 부모를 뒀을 확률이 높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여성은 자녀 출산과 양육에서 정부 복지혜택과 조부모 도움 모두를 받지만 부유하지 않거나 가난한 부모의 자녀일 확률이 높은, 나쁜 일자리의 여성은 모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복지혜택과 개인 소득 및 조부모 도움의 양극화는 결혼과 출산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양극화될수록 결혼과 출산의 특권에서 배제된 남녀의 비중은 더 높아지고, 혼인율과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좀 더 유연한 형태의 일·가정 양립정책이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주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불법으로 여겨 처벌하지 말고 근로시간 조정 같은 감당 가능한 대책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표적 육아 조력자인 조부모에 대한 정부 지원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가족을 돌보는 조부모에게 일종의 급여를 정부가 주는 것이다. 화단 정리에 수십 명이 달려드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노인 일자리’다.

한국에서 특권화 현상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젊은 부부의 소득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높은 주거비용이다. 1960~1970년대 가족계획 이후 핵가족은 전통적인 확대가족(대가족)을 제치고 대표적 가족 형태가 됐다. 하지만 많은 신혼부부는 결혼자금과 주거비용을 마련할 때 부모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부모의 재력이 결혼과 출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확대가족의 장점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성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과거의 가족 구조로 돌아가서는 안 되지만 저출산 시대에 부모와 자녀 세대가 상호 의존하는 새로운 개념의 확대가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정부가 다세대 가족 지원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지방에서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소멸 문제도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전체 228개 시·군·구 중 52%인 118곳이 소멸 위험지역이다. 대부분이 지방이다.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도시에는 괜찮은 둥지가 없다’고 한다. 먹이가 둥지보다 우선하므로 지방의 젊은이는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도시의 주거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방에 일자리가 있으면 많은 젊은이가 주거가 쾌적한 지방에서 살고자 할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재택근무다. 정부가 기업에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장려하고 지방에 근거지를 둔 스타트업 일자리를 지원한다면 많은 젊은이가 쾌적한 주거지를 찾아 지방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초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인 높은 주거비 부담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고령화 대응은 노인 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노인 비중)를 낮추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현재 구조가 유지되면 노인 부양비는 2020년 22에서 2070년 100.6으로 높아진다. 다섯 명의 젊은이가 한 명의 노인을 부양하던 것에서 젊은이 한 명이 한 명 이상의 노인을 부양하는 것으로 바뀐다.

노인 부양비를 낮추기 위해선 정년 연장 등을 통해 노인 인구를 줄이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면 65~69세 노인은 의존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로 전환된다.

노동인구의 내실화도 고려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고 청·장년층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인구의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지식·교육 혁명도 필수적이다. 미래에 필요한 지식은 비판적 문제 제기를 통해 기존 지식의 문제점을 찾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창의적인 실용 지식이다. 저출산 해소를 위한 해법도 지식혁명을 통해 도출할 수 있다. 단순히 서구의 해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해법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한국과 비슷한 인구 위기를 겪는 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은

△1981년 성균관대 사회학과 학사
△1986년 고려대 사회학과 석사
△1995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사회학 박사(인구학 전공)
△2002∼2022년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
△2022∼현재 한국인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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