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그날…정치가 혁신을 죽였다

입력 2023-06-02 18:26   수정 2023-06-12 16:38

“혁신을 빙자한 사기꾼(타다)에 대한민국 전체가 휘둘려왔다.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택시 제도를 무력화하는 영업 전략을 채택한 범죄자 집단이다.”

2020년 3월 6일. 자정을 6분 남기고 일명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타다를 ‘사기꾼’이라고 하자 의석에서는 웃음소리와 함께 “잘한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김 의원은 2019년 7월 타다 금지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택시업계 표 앞에 여야 의원은 하나였다. 이날 국회는 타다 금지법을 찬성 169표, 반대 7표, 기권 9표로 가결했다. 김 의원과 함께 법안 통과의 최전선에 선 것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2019년 10월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택시의 서비스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택시 혁신 촉진법’”이라고 주장했다. “타다가 대법원에 가면 백전백패 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민은 택시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전 VCNC 대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받은 재판에서 지난 1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 의원의 지역구는 법인택시 업체만 20여 곳에 달하는 서울 중랑구다. 그는 21대 국회에 재입성해 지난 4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공약으로 혁신을 외치던 여야 지도부도 표 앞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론은 아니다”고 했지만,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전화 단속을 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아예 ‘찬성 당론’을 정했다. 당시 유일하게 반대 토론에 나선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20대 국회의 마지막 모습이 미래로 가는 첫차가 아니라 과거로 가는 막차를 타고 있는 것”이라며 “정말 비극”이라고 했다.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이틀 만에 상임위 통과
“오늘 통과될 법이 ‘타다 금지법’입니까.”(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타다’와 택시 모두를 위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김경욱 당시 국토교통부 2차관)

‘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석 달 전인 2019년 12월 6일.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토론은 이 문답이 사실상 전부였다. 모빌리티 혁신에 대한 논의나 타다 측 주장을 대변해줄 의원은 없었다. 박 의원과 보조를 맞춘 듯한 김 전 차관의 문답 뒤 타다 금지법은 30명 의원 만장일치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거치면서 여야 이견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국토위 소속 의원 30명 전원이 택시업계 눈치를 봐야 하는 지역구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토위 여당 간사는 윤관석 민주당 의원, 야당 간사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이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20대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처리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때 혁신 산업 아이콘으로 떠오른 타다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4월 총선이 다가오자 법안은 이틀 만에 상임위를 통과했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검찰이 ‘불법 콜택시’라며 이 전 대표 등을 기소하자 “너무 성급했다”고 비판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타다 제도화법’”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듬해 3월 4일 타다 금지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었다. 전통적으로 법사위는 18명 의원 전원의 동의를 얻은 뒤 법안을 본회의로 넘기곤 했지만 이 법안은 예외였다. 이철희 당시 민주당 의원과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공교롭게도 법사위 18명 중 이 두 명만 지역구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의원은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다. 여상규 법사위원장(미래통합당)은 복수의 반대 의견에도 의사봉을 두드렸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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