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600조 시장으로 커진다

입력 2023-06-06 16:39   수정 2023-06-06 16:40


충북 오창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는 전기차용 충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이 있다. 10만㎞ 이상 달린 전기차 택시에서 나온 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것이다. 이 시스템은 전기료가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ESS를, 전기료가 비싼 낮 시간대엔 전기차를 충전해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 66kWh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이 시스템의 100kW 충전기로 한 시간 충전하면 300㎞를 달릴 수 있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다 쓴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새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폐배터리에서 일정 부분 가져오면 소재 확보 안정성과 제조 원가 절감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업계에선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면 현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30~40%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들이 폐배터리 산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배터리 재활용 시장 600조원까지 커진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올해 7000억원에서 2030년 12조원, 2050년 6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수명이 다한 전기차에서 쏟아지는 폐배터리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평균 수명은 7년 정도다.

SNE리서치는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대수가 2025년 56만 대에서 2040년 4227만 대로 75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발생하는 폐배터리 용량 역시 같은 기간 42GWh에서 3339GWh로 급증할 전망이다. 하루 평균 50㎞를 주행할 수 있는 순수 전기차 3억3400만 대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 같은 양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의 선순환이 이뤄지면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배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자원 고갈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폐배터리에서 원재료 40% 추출 가능
엄밀히 보면 배터리의 ‘재사용’과 ‘재활용’은 다른 개념이다. 배터리 재사용은 전기차에 쓰고 수명이 남은 폐배터리를 모아 진단·선별, 재가공 등을 거쳐 새로운 제품에 다시 쓰는 것을 말한다.

반면 배터리 재활용은 재사용이 어려운 폐배터리에서 새로운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를 뽑아내는 게 핵심이다. 재사용이 어렵다고 진단된 폐배터리를 완전히 분해·용해해 코발트, 니켈, 리튬 등 다양한 원재료를 추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양극재 생산 단계에 투입해 새 배터리를 만드는 데 활용한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100kWh 폐배터리에서는 탄산리튬 59.4㎏, 코발트 9.4㎏, 니켈 75㎏을 추출할 수 있다. 기존 배터리의 40%를 재활용하는 셈이다.

배터리 재활용의 중요성은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와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전기차는 전체 차량의 10%에 달하는 2억4000만 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광물의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배터리 전기차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 핵심 광물인 리튬이다. IEA는 2040년까지 전 세계 리튬 수요가 2020년 대비 42배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2030년부터 공급난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IRA·광물 무기화에도 대비
폐배터리 활용은 공급망 확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핵심 광물을 무기화하려는 일부 자원 대국에 대응해 조금이나마 원료 수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3개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리튬판 OPEC’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칠레는 지난 4월부터 리튬 채굴을 공공·민간 파트너십 형태로만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사실상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 2%를 보유한 멕시코 역시 최근 리튬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용 광물을 생산하는 신규 광산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배터리 재활용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 조달지에 따라 보조금을 달리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주요 성장 동력이다. IRA에 따라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광물을 북미에서 재가공하면 원산지를 미국이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배터리 재활용을 활성화하면 중국 등 자원 보유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우리나라가 주력하는 삼원계 배터리의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어 경제적 이점이 높다”며 “순환형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빈난새 기자
"폐배터리 재활용률 높여라"…국내 완성차 기업·2차전지 업체 투자 활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현대차…국내외 재활용 업체와 잇단 협력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일찌감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산업 육성에 나섰다. 미국은 배터리 재활용 기업 육성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월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에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를 대출 형태로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는 SK온과 포드의 북미 합작법인 ‘블루오벌SK’로부터 폐배터리를 받아 재활용을 하고 있다. 중국은 배터리 이력 관리, 생산자 재활용 책임제, 핵심 소재별 회수 목표치 설정 등 각종 제도적 장치를 도입했다.

전기차 전환에 주력하고 있는 완성차 기업들과 배터리 업체들은 원자재 회수율을 높이고 배터리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말 LG화학과 함께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라이사이클’에 총 6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2.6%)를 단행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라이사이클은 방전과 가열 과정 없이 폐배터리에서 원재료를 추출할 수 있는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세운 미국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라이사이클에 공급해 코발트, 니켈, 리튬, 흑연, 구리, 망간 알루미늄 등 다양한 원재료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SDI는 천안·울산 공장에서 발생한 스크랩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체계를 이미 구축했다. 헝가리 말레이시아 미국 등 해외 거점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협력을 통해 원자재 재활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국내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성일하이텍의 지분 8.79%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SDI는 배터리 불량품이나 폐기물을 성일하이텍에 공급하고 성일하이텍이 원료를 추출해 다시 삼성SDI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탄산리튬과 인산리튬 양산에 성공한 성일하이텍은 수산화리튬 양산을 위한 기술 개발도 연내 완료할 예정이다. 올해 이 회사가 생산할 탄산리튬은 1800t에 달한다.

현대자동차는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등 그룹사와 폐배터리 회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현대글로비스가 고장이 났거나 쓰임이 다 된 배터리를 회수하고 운반하면 현대모비스가 재사용 배터리를 만드는 식이다. 사용 후 배터리의 경로를 결정하는 진단 과정이 갈수록 중요해짐에 따라 현대차는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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