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섬'에 갇혀 순환보직 뺑뺑이…전문성 떨어지는 공무원들

입력 2023-06-07 18:01   수정 2023-06-15 16:34


세종에 있는 한 부처 차관은 최근 산하기관이 지분을 보유한 민간기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업무 방식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그는 “사무관들이 법무·회계법인, 투자은행 사람들을 자주 만나 정보 교류를 해야 하는데 세종청사에 틀어박힌 채 전화만 하고 있다”며 “기업 매각이나 구조조정과 관련한 공무원들의 역량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토로했다.

2012년 세종시 이전과 1~2년마다 부서가 바뀌는 순환보직 등이 겹치면서 정책을 만드는 중앙부처 공무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들이 민간부문의 빠른 변화에 둔감할 뿐 아니라 제대로 따라잡지도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에너지 대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경제부처 출신 전직 관료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정부가 아젠다를 제시하면 민간이 따라오는 형태였다”며 “지금은 공직사회가 민간 기업을 따라가기도 역부족”이라고 했다. 금융회사 임원으로 옮긴 전직 과장급 공무원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소위 ‘수재’로 불렸던 고시 출신 사무관들이 10년만 지나면 또래 기업 간부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직한 뒤에야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다.

전직 관료들은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후 정책 품질이 현장과 괴리됐고 ‘탁상행정’이 양산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국·과장과 사무관이 ‘카카오톡’으로 정책자료를 주고받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차질을 빚은 사례도 적지 않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종시가 (외딴섬처럼) ‘갈라파고스화’하는 것은 정부 경쟁력에 치명적인 단점”이라며 “섬세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한 공무원들의 민감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종 근무와 함께 정책 실무를 하는 사무관들의 민간 접촉이 확 줄었다는 지적이 많다. 한 대기업 대관 임원은 “예전엔 과천청사에서 수시로 담당과장, 사무관들과 정책을 협의했는데 지금은 규제 정보를 얻는 것 외에는 굳이 세종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스스로도 업무 전문성에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1년 중앙부처 공무원 41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본인 업무에 대한 전문성 인식 점수는 5점 만점 중 3.45점에 그쳤다. 설문에 응한 공무원의 36.2%가 전문성을 저해하는 1순위 요인으로 ‘순환보직으로 인한 잦은 인사이동’을 꼽았다. 통상 중앙부처 인사는 1년에 한 번 이뤄진다. 특히 과장급 간부가 한 보직에 2년 이상 머무르는 경우는 드물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순환보직에 따른 공직사회의 ‘아마추어리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해 11월 인사혁신처가 출범하면서 공직사회 전문성 강화 방안을 내놨지만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민간기업 한 임원은 “민간기업에선 대부분 한 곳에 최소 3년간 근무하는 반면 담당부처 과장은 1년에 한 번 바뀐다”며 “담당과장이 바뀔 때마다 모든 업무가 ‘리셋’되면서 처음부터 현안을 다시 설명하곤 한다”고 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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