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업이 보유한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을 강제로 소각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연초 ‘2023년 업무보고’를 통해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강화 등 제도 개선’에 포함한 것이 발단이었다. 취지는 소액주주 이익 지키기, 주주 이익 환원, 기업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대주주나 경영진의 악용 방지 등이다. 반면 법으로 기업의 자사주 매각을 강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일뿐더러, 소액주주 배려 차원의 주가 상승론은 현실과 떨어진 탁상공론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더구나 기업사냥꾼과 행동주의를 표방한 기업공격 펀드가 갈수록 급증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진다는 차원에서 반대도 있다. 과잉 입법 논란이 커지는 자사주 강제 소각 법제화, 어떻게 볼 것인가.
회사 경영진이나 대주주(지배 주주)가 의도적으로 자기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려는 ‘꼼수’도 방지할 수 있다. 경영진과 대주주가 개인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놓고 주주총회에서 자기 주식처럼 지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이런 우회적인 지분 확대를 막을 수 있다. 보유가 아니더라도 자사주를 우호 그룹에 매각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자기 돈을 투자하지 않고 지배주주의 지분을 확대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이런 경우 자사주 매입에 영향력이 큰 지배주주와 이런 의사 결정권 밖의 소액주주 간 이해가 충돌한다. 이런 불균형을 막자는 취지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를 보면 미국 같은 데서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대부분 소각한다. 그 결과 주가가 오르면 소액주주는 약간의 배당보다 더 큰 금전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사주 소각 기업이 2%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보유 자사주를 취득 목적과 달리 처분해도 현행 법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공시하고도 얼마든지 달리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폐단을 제도로 막자는 것이다.
경영권 방어 문제도 심각하다.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 기업에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한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 자사주가 유일한 방어 수단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일본 회사법 등에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 선택권) 같은 대주주 및 경영진 보호제도가 있다. 외부 세력의 적대적 기업 인수 시도에 맞설 유일한 대응책마저 없애버리면 국내 기업을 우리 스스로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모는 결과가 된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이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도 없는 경영권 방어에 거액의 비용과 함께 심적 부담까지 안게 해서는 안 된다.
법제화되면 소급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일정 처분 기간을 줘도 이미 보유 중인 주식을 강제로 소각하라고 법제화할 경우 기업 재산을 박탈하는 소급 악법이 된다. 일정 시점부터의 자사주 소각이어도 주가를 하락시켜 기존 소액주주 재산권을 침해한다. 과거 과세 판례를 봐도 자사주는 기업의 재산일 뿐이다. 사고팔아 이익이 나면 과세해온 것이다. 사유재산은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부분적 문제를 보면서 자산 취득과 처분의 자유를 뺏는 것은 과잉 입법이고, 명백한 규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명분이나 지향점에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 고유의 재산이라는 점, 많은 기업이 스스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 경영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일반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은 기업 평판 높이기, 소비자 확대,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사실상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입하더라도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내세우고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다른 접근법은 기업의 최대 고민 가운데 하나인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면서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차등의결권, ‘황금주’(보유 주식의 수량·비율에 관계없이 기업의 주요 경영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포이즌필 등 경영계가 오랫동안 시행을 원해온 경영권 방어 수단이 많다. 기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자본시장을 흔들 수 있는 제도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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