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인구 줄고 땅값 뛰자…'83년 역사' 서울백병원 폐원

입력 2023-06-12 18:18   수정 2023-06-13 01:28


서울 사대문 안 대학병원으로 83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백병원이 오는 8월 문을 닫는다. 서울의 심장부(중구 저동)에 있는 백병원은 부지 가치만 약 2000억원에 달해 상업용 건물로 개발될 것으로 점쳐진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성인 간암 환자 간이식에 성공하는 등 한국 외과 발전에 한 획을 그었던 백병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심 내 유일 종합 병원의 쇠락
12일 인제학원 등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20일 이사회를 열고 병원 폐원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백병원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8월 말 폐원을 사실상 확정한 상황”이라며 “직원 393명을 다른 병원으로 전출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병원은 1941년 ‘백인제 외과병원’으로 첫 영업을 시작했다. 1975년엔 서울 도심의 유일한 종합병원이 됐다. 특히 돈이 되지 않아 다른 병원이 기피하는 외과 수술 분야에 강점을 보였다. 1992년 이혁상 교수팀은 국내 최초로 성인 간암 환자 간이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백병원은 서울에 이어 부산과 일산 등에 분원을 내며 성장했지만 정작 서울백병원은 적자에 시달렸다. 도심 상권 개발로 인근 주민들이 떠난 데다 서울아산병원 등 대기업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에 밀려 환자가 줄어든 탓이다. 2004년 처음 73억원 손실을 기록한 뒤 지금까지 누적 적자 1745억원을 기록했다.

백병원 위기설은 예전부터 나왔지만 폐원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최근 들어서다. 백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의료·공공분야 전문 컨설팅 회사인 엘리오앤컴퍼니에 경영 진단을 의뢰해 “폐업 후 상업 시설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중구의 유명 산부인과인 제일병원의 컨설팅을 맡은 회사”라며 “제일병원이 폐업 후 주거용지로 개발된 사례를 따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부지 개발 가능하자 전격 폐원 결정
백병원이 폐원을 검토한 배경엔 정부의 규제 완화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는 작년 6월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재산을 유연하게 활용해 재정 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사립대가 일정 수준의 교육용 건물·토지를 확보했다면 나머지 유휴 재산은 조건 없이 수익용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백병원은 내부에 인제대 의과대가 있어 교육용 재산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와 함께 새 지침에선 교지(땅), 교사(건물) 등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용도 변경하기 위해 법인으로 넘기는 경우 해당 재산의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비회계에 채워 넣도록 했는데, 이를 면제해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백병원 부지 가치에 해당하는 약 2000억원을 교비에 넣지 않고도 남대문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과 같이 상업용 시설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백병원 관계자는 “명지대를 소유한 명지학원을 위한 규제 완화였는데 백병원도 혜택을 받게 됐다”며 “법률 검토 결과 요양병원이나 상업 시설 등으로 활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백병원 경영정상화 TF는 △건물 매각 △수익용 건물로 변경 △별도 의료법인 설립 등 1~3안의 정상화 방안을 이사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업계에선 백병원이 상업용 건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부지 가치만 약 2000억원으로 평가되는 데다 30~40층 규모의 업무용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인근의 제일병원 역시 폐원 후 부지가 매각됐고 도시형생활주택 ‘힐스테이트 남산’이 건축 중이다.

백병원 소속 의사와 직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 등 지방 병원 건립으로 서울백병원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며 “인제학원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직원들이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도 당황하고 있다. 백병원은 서울 도심의 유일한 감염병전담기관이자 대규모 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도심의 공공의료 기능 부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폐원에 앞서 서울시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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