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불체포특권

입력 2023-06-20 17:55   수정 2023-06-21 00:16

의원 불체포특권의 시초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왕정에 제동을 거는 의원들의 체포·구금을 남발하고 의회를 해산하려고 했다. 이에 맞서 의회는 의원특권법을 만들어 의원을 임의로 체포·구금할 수 없도록 했다. 삼권분립을 중시한 미국도 건국헌법에 의원 불체포특권을 명시했다. 한국도 제헌 헌법에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넣었다. 헌법엔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의원은 국회에서 과반 출석에 과반이 찬성해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정권 탄압으로부터 입법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불체포특권은 비리 의원 보호 수단으로 전락했다. 1998년 비리 사건에 연루된 이신행 한나라당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다섯 차례나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방탄 국회’라는 용어가 생겼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23차례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으나 불응해 공권력을 무력화했다. 정대철, 최돈웅 등 여야 의원 7명의 체포동의안이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 일괄 상정돼 무기명 투표를 한 끝에 모두 부결됐다. 여야를 떠나 동업자 의식을 발휘한 것이다.

이런 구태 때문에 제헌의회 이후 지금까지 체포동의안 64건이 제출돼 17건만 가결됐다. 21대 국회 들어와서도 8건 중 4건이 부결됐다. 부결된 4건은 모두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또는 민주당 출신 의원들이다.

3권 분립이 자리 잡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불체포특권이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영국은 1967년 의회 특별위원회에서 폐지를 권고한 이후 불체포특권에 힘이 빠지고 있고, 미국도 민사상 체포에 대해서만 불체포특권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제한 추진을 발표했고,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폐지에 100% 찬성한다고 해놓고 공염불로 만들었다.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한다고 했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 서명을 제안했다. 이번만큼은 일회성 면피용 쇼가 안 되길 바란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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