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과학은 가슴이 시킨다

입력 2023-06-21 18:15   수정 2023-06-22 00:26

지난달 25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탑재된 위성이 정상적으로 분리돼 안정된 궤도에 안착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한국의 항공우주 분야 과학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국방력 향상과 미래 자원 확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2조원 이상의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연구진의 노력과 땀이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과에 이어 이번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하고 과감한 투자를 약속했다. 현대는 과학기술이 국가의 지위와 미래를 결정하는데, 이를 예측이라도 하듯 과학실험을 최초로 표현한 그림이 있다. 바로 조지프 라이트(1734~1797)의 ‘공기펌프 속의 새 실험’이다.

이 작품은 18세기 영국 화가인 라이트가 진공상태를 설명하는 떠돌이 과학자를 묘사한 것이다. 당시 과학자는 일종의 마법사와 같은 사람들로, 부유한 가정에 방문해 흥미로운 과학 실험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다. 붉은색 가운을 입은 과학자가 새가 들어 있는 유리 플라스크를 들고 있는데, 공기펌프로 진공상태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플라스크 안의 산소가 없어져서 새는 호흡할 수 없을 것이다.
공기펌프 실험의 의의

당시 산소와 호흡에 대한 개념이 생소했기에, 화면 중앙의 아버지가 두 딸에게 실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언니는 새가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눈을 가리고 있지만, 동생은 아직 생사(生死)에 대한 인지가 없는지 언니의 허리를 꼭 잡고 새를 바라보고 있다. 이 가족과 달리 화면 왼쪽에 있는 남자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시간을 재고 있고, 옆에 있는 소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플라스크를 보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도 소년 뒤의 남녀는 실험에는 관심이 없고 서로를 바라보며 연애를 즐기고 있다. 반대편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탁자에 놓인 비커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속에는 머리뼈(해골)가 들어 있는 듯하다. 이는 당시 바니타스(vanitas·공허 혹은 헛됨) 화풍의 일부로, 과학과 지식의 진보 속에도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한 것 같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풍요로운 미래를 불러오겠지만, 오히려 기계에 맞춰 더욱 바쁘게 일해야 하는 인간의 미래를 예상한 것일까?
과학을 호흡하자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호흡 작용은 영양물질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는 대사 과정으로, 주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가스 교환을 의미한다. 이 작용은 가슴 안의 폐(허파)에서 이뤄지는데 성인의 경우 약 500~600g 정도로 가벼운(light) 장기라서 ‘lung’이라고 한다. 공기는 기관을 지나 양쪽 폐 안의 기관지를 통해 폐포(허파꽈리)에 도달한다. 포도송이 모양의 폐포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는데, 산소가 코에서 폐포까지 전달되고 가스교환까지 일어나는 과정이 호흡이다.

과거에는 호흡은 영(靈·sprit) 또는 정신이 다시(re-)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respiration’으로 명명했다. 즉, 호흡은 단순히 공기가 아니라 영혼과 정신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트는 당시 과학자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실험 중 호흡 작용을 묘사하며 과학을 대하는 정신과 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지표를 봤을 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작품 속 해골의 의미와 호흡의 어원을 생각해봤을 때, 과학기술 발전 못지않게 연구 윤리나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중요하다. 과학이 부국강병의 잣대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과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돼야 한다. 과학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가슴을 떨리게 하는 학문이다.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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