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美 경제가 '침체 지연'인 이유

입력 2023-06-22 18:30   수정 2023-06-23 00:44

트라우마는 과거의 충격에서 온다. 보통 개인의 상처를 뜻하지만 최근 미국 기업들도 경영 전략에서 트라우마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인력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당시 거리 두기 등을 이유로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 탓이다. 인력 부족에 시달린 미국 기업들은 최근엔 경기 침체 우려가 있음에도 고용 인원을 유지하고 있다. 근무 시간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충원에 나서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럴까.
美 기업, 경기 나빠도 고용 유지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민간 부문 직원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지난 5월 34.3시간으로 2019년 평균보다 짧았다. 5월 미국 신규 일자리가 예상치 19만 개를 훨씬 웃도는 33만9000개를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기업들의 트라우마 덕을 보는 것은 개인들이다.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니 임금 상승률도 높다. 미국의 5월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대비 4.3% 상승했다.

미국 대학 진학률이 떨어진 것도 이런 노동시장 상황과 무관치 않다. 청년층 노동자들이 비싼 학비를 내며 대학에 가는 것보다 뜨거운 노동시장 덕에 비싼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돼서다. 미국에서 최근 고교를 졸업한 16~24세 연령층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62%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66.2%보다 떨어졌다. 반면 레저·접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4월부터 올해 4월 사이 30% 가까이 치솟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도 미국 경제가 죽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일자리 덕분이다. 미국 정부가 팬데믹 기간에 대규모로 푼 부양금은 개인 저축액을 늘렸다.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5월 미국의 소매 판매가 4월보다 0.3% 증가한 이유다.
일자리 넘쳐나도 불안감 여전
인플레이션 빼곤 나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학자와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호황’이라는 말을 쓰길 꺼린다. 대신 ‘경기 침체 지연’이라는 어려운 표현을 굳이 사용한다. 몇 가지 요인으로 현재의 비정상적인 경기 호조 흐름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선 신규 일자리는 외식업과 여행 등에서 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 업종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가 조금만 줄어도 이들 업종의 일자리는 직격탄을 받는다. 개인들의 초과 저축 역시 늦어도 올 연말이면 소진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최근 미국 증시는 랠리를 이어왔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일각에선 올해 말 경기침체가 시작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경제학자들은 기준금리 인상이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최대 2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Fed와 유럽 중앙은행(ECB)은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했다. 올해 말이 돼야 2년을 거의 채우게 된다.

경기 침체에 진입하면 기업들도 자의와 관계없이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인력 부족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생존에 대한 열망이 앞설 수밖에 없다. 대량 해고만큼 손쉽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긴 힘들다. 현재 넘쳐나는 일자리와 강력한 소비에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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