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품소재 관련 중소기업 A사는 프랑스 출신 금속·재료공학 전공자를 채용하려고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이 외국인 근로자는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취업비자(E7) 발급을 거부해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국인 고용 보호 규정(20%룰)에 따라 금속·재료공학 전공자 한 명을 뽑으려면 국내 관련 전공자 다섯 명을 더 채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중소기업 여건상 국내 전문가를 채용하기 너무 어려워 외국인 인력이라도 데려오겠다는데 현실성 없는 취업비자 규정에 가로막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수요는 늘고 있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외국인 체류자격 기준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단순 업무를 위해 필요한 E9(비전문 취업) 비자는 물론 숙련·전문인력에게 발급해주는 E7(특정 활동) 비자도 받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용접, 주물, 도금 등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뿌리기업의 인력난이 특히 심하다. 부산 녹산산업단지에 몰려 있는 12개 표면처리(도금) 업체의 외국인 근로자 비율은 90% 수준이다. 이오선 부산청정표면처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내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현안”이라고 했다.
제조업 내에선 외국인 근로자 확보를 위한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수주 호황을 맞은 조선업에 5000명을 정부가 우선 할당하면서 다른 제조업종에 돌아갈 인력이 그만큼 줄었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할 때 연초에 쿼터 물량을 정하는 범위에서만 운용하는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경기 변동과 업종, 지역 수요를 상시 분석하는 유연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체류 기간이 제한된 E9 비자보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숙련기능인력 비자로 전환하는 절차도 까다로워 숙련공 채용이 절실한 중소기업계의 불만이 높다. E9 외국인 근로자가 E7-4 비자(E7의 한 종류)로 전환하려면 연간소득 등을 고려한 ‘산업기여가치’와 자격증 소지 여부 및 기량 검증 등을 따지는 ‘미래기여가치’ 분야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 나이가 어릴수록, 한국어 능력이 좋을수록 가점이 높다. 이 밖에 국내에서 정기적금을 2년 이상 드는 등 갖춰야 할 조건이 즐비하다. 사실상 전환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군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시화산단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오래 근무한 숙련공이 E7-4 비자 전환 대상인데 나이가 적을수록 가점이 높다는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성실한 외국인 근로자를 장기 고용하고 싶어도 규제에 묶여 할 수 없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법무부가 지난달 28일 산업현장의 숙련기능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E7 비자 쿼터를 지난해 2000명에서 올해 3만 명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런 이유로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최형창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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