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심청아, 춘향아, 우리 커피한잔 할까

입력 2023-07-09 17:58   수정 2023-07-10 00:13

내가 배운 판소리 ‘심청가’와 ‘춘향가’ 창본에서 심청 나이는 십오 세, 춘향 나이는 십육 세다. 십오 세와 십육 세라…. 내가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더라? 교복 입고 학교 다니며 주머니에 치즈 버거 하나 소중하게 넣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팝송을 듣던 시절이다. 운이 좋아 부모님의 돈과 노동으로 차려진 밥을 먹으며 친구 관계, 시험 성적 등을 인생 최대의 고민으로 끌어안고 살던 시기다. 조선시대의 십오 세, 십육 세인 춘향이와 심청이는 무슨 교육을 받고, 무슨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
놀랍도록 진취적인 춘향·심청
심청이는 아홉 살이 되는 해에 아버지에게 ‘순우의의 딸 제영의 일화’나 ‘까마귀의 반포보은’을 예로 들며 자신이 아빠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무시무시한 어린이다. 배운 대로 착실히 행하는 모범생의 피가 흘렀다 치더라도, 자신이 읽은 고서의 내용을 응용해 어른(자신의 아빠)을 설득하고 그 결과로 매일같이 바가지를 들고 아빠와 자신이 먹을 밥을 얻으러 돌아다니는 심청의 행동은, 아무리 조선시대라 하더라도 실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아홉 살이, 자신의 밥을 알아서 챙겨 먹는 것을 넘어 부모의 밥상을 걱정하며 그것을 홀로 해결하려 거리로 나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춘향이는 엄마 월매가 자신이 못다 이룬 ‘계급’의 욕망으로 키워낸 딸이다. 나라의 재상인 아버지와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계급 혼혈’ 춘향이는, 10대 때 이미 기원전 3세기 제나라의 왕촉이 울부짖은 ‘충신불사이군 열녀 불경이부절’을 자신의 철학으로 가진 무시무시한 청소년이다. 어느 봄날 그네 타러 나갔다가 자신에게 찾아온 방자가 가리킨 손끝에 서 있는 이몽룡을 보고 짐짓 마음에 들어 그의 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몽룡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고사성어로 문답하며 태도를 살피는 영리한 친구다.
그들 못 다한 얘기 전하는 가교
춘향은 분명 중학생 때의 나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명확한 친구다. 나의 성장을 도모할 애인은 내가 고르며, 나의 지식과 그의 지식을 견주어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만남을 결정하는 춘향의 태도는 그 나이대 여성들이 지녔으면 하는 모습이다. 얼떨결에 애인에게 주도권을 넘겨줘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모두 한 발씩 늦지 말았으면 한다.

심청이는 자신의 의지로 ‘효’의 철학을 지키며 극단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춘향이 또한 자신의 의지로 ‘의리’를 선택하며 목숨을 건다. 이 이야기를 빚어낸 이들은 아마도 자신이 바라는 자식의 상으로서 심청이의 인당수 사건과 그를 통한 권선징악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바라는 여성상으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춘향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그 시절의 통념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정확하게 관철하고 행동하는 심청이와 춘향이는 놀라울 만큼 진취적이다. ‘심청가’나 ‘춘향가’를 들고 무대에 설 때 항상 그들과 마주 앉아 커피 마시는 기분으로 준비한다. 그들이 못다 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지금 시대의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교 역할을 기꺼이 해내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의 전통 판소리꾼인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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