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꼭 파괴적일 필요 없어…기존산업과 윈윈해도 블루오션 창출"

입력 2023-07-11 17:44   수정 2023-07-12 01:18


“혁신을 위해선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1942년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뒤 수많은 사람에게 ‘혁신은 곧 파괴’였다. 낡은 것을 부수어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겼다.

블루오션 전략의 창시자 김위찬·르네 마보안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정답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많은 경영자가 승자 대 패자, 제로섬(zero-sum)의 사고방식에 여전히 갇혀 있다”며 “기존의 것을 깨부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혁신을 일궈내는 ‘비파괴적 창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경영사상의 두 거장이 내놓은 블루오션 전략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2005년 발간한 <블루오션 전략>으로 전 세계에 ‘블루오션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가 신간 <비욘드 디스럽션: 파괴적 혁신을 넘어>로 돌아왔다. 블루오션 전략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블루오션 시프트>를 2017년 말 내놓은 이후 약 5년 만이다. 지난 5월 미국에서 발간된 이 책은 블루오션 전략의 원리와 방법론에 집중한 전작들을 넘어 ‘혁신’에 관한 기존 관점을 재정립했다. 오는 19일 <비욘드 디스럽션>(사진)의 한국어판 출간에 앞서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를 인터뷰했다.

▷블루오션 전략이 나온 지 20년이 돼 갑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전까지 기업과 정부, 개인 모두 ‘경쟁’만이 핵심 전략이라고 믿었습니다. 상대를 물리치고 경쟁사를 앞지르는 걸 목표로 삼았죠. 상대는 패자, 나는 승자가 돼야 했어요. 하지만 블루오션은 이런 경쟁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기존의 파이를 두고 내 몫을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둔 것입니다.”

▷비파괴적 혁신이란 새로운 개념을 들고나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비파괴적 혁신은 블루오션을 창출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란 점에서 결은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가와 혁신가는 여전히 ‘파괴’와 ‘제로섬’의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파괴를 수반하지 않는 창조,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혁신의 사례가 많은데도 이를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혁신과 성장을 위해선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합니다.

“분명 파괴라는 개념은 오랜 시간 동안 혁신의 기본 전제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시장을 파괴하거나 뒤흔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시장이 파괴 없이 창출되고 있습니다.”

▷비파괴적 창조란 무엇입니까.

“파괴적 혁신은 기존 산업의 경계 안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때 일어납니다. 반면 비파괴적 혁신은 기존 산업의 경계 너머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입니다. 두 가지 모두 블루오션을 향한 길이지만 서로 분명히 다르죠. 비파괴적 창조는 기존 일자리와 기업을 직접적으로 대체하지 않으면서 성장과 고용을 창출합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주십시오.

“미국의 신용카드 소액 결제 시장을 개척한 블록(옛 스퀘어), 액션 카메라 시장을 창출한 고프로가 대표 사례입니다. 화이자의 비아그라, 일본의 도심 주차장 운영업체 파크24도 그렇습니다.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어요. 김치냉장고를 처음 만들어낸 위니아는 기존 냉장고 산업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냈습니다. 한국의 산후조리원도 비파괴적 창조의 산물입니다.”

▷파괴적 혁신은 나쁜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파괴적 혁신은 파괴적 혁신과 보완적인 관계로 봐야 합니다. 기존 산업이 이미 효율을 잃었거나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면 분명 파괴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땐 비파괴적 혁신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혼란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없이 혁신과 성장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지금 비파괴적 혁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만 들어봅시다. 우선 사회적 분란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비파괴적 창조가 일어날 땐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더 수월하게, 덜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국에서 승차 호출 서비스 업체 ‘타다’가 어려움을 겪은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방법이라는 사고방식에 갇히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과거를 의식하게 되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비파괴적인 혁신의 방법까지 포함해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놓치게 되죠. 경영자들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윈윈’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비파괴적 창조를 통해 기업도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혁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우려도 큰데요.

“AI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AI가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만을 위해 쓰인다면 대규모 일자리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AI 그 자체가 아닌, ‘혁신’입니다. 비파괴적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AI를 활용한다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성장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공공 부문에서도 비파괴적 혁신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선례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공공 우편 서비스인 ‘라 포스트’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에 밀려 한때 기존 시장 대부분을 잃고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보유한 지사 네트워크와 집배원 인력을 활용해 홀몸노인 가정 방문 서비스 ‘VSMP’를 고안해 비파괴적인 새 시장 창출에 성공했습니다.”

▷자원이 풍부한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파괴적 혁신의 기회를 잘 찾아내는 조직은 내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건은 외부 자원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민첩하고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합니다. 다양한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유연한 스타트업에서 더 잘 이뤄질 수 있습니다.”

▷비파괴적 혁신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불편해도 그저 참고 넘겼던 문제나 경제적·사회적·인구통계학적 이유로 새롭게 떠오른 문제를 명확히 포착하고 그 해결 방안을 탐구하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 급격한 고령화와 홀몸노인 급증, 농촌 공동화 등이 비파괴적 창조를 위한 잠재적인 기회 요인이라고 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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