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결합, 그리고 디지털."
김창수 에프앤에프(F&F) 회장이 꼽은 성공 비결이다. 김 회장은 MLB, 디스커버리 등의 의류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패션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기업인이다. 그는 지난 15일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에서 열린 제주포럼에 참석해 F&F의 성장 비결, 중국 시장 공략, 디지털 경영 등에 대해 한 시간 정도 강연했다.
김 회장은 MLB의 글로벌 시장 진출 전에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은 '동서양의 결합'이다. 그는 BTS, 블랙핑크 등의 성공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다. 김 회장은 "BTS는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것에 더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려는 의지까지 갖추고 있다"며 "아시아에 뿌리를 갖고 서양화가 돼 있는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1992년부터 30년간 패션 사업을 하며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도 '동서양의 결합'에 있었다. 그는 베네통 등 해외 브랜드를 한국화해서 국내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왔다. 그는 "30년 패션기업을 경영하며 한 일이 서양의 브랜드를 들여와 한국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라며 "'동서양의 결합'을 해왔다는 생각이 드니 세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0년대 들어 아웃도어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F&F도 시장 진출을 고심했다. 김 회장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디스커버리 브랜드를 활용하기로 결정하고선 정체성을 '자연 친화적 아웃도어'로 잡았다. '고기능성'을 강조한 기존 브랜드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한국 등 동양에선 서양과 달리 자연에 대해 정복이 아닌 공존을 모색한다"며 "자연 정복에 필요한 서양의 아웃도어가 아닌 자연과 같이 즐기는 아웃도어를 시작하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에 첫 론칭 때 김 회장은 '5년 안에 5등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5년 만에 매장당 매출 기준 1위를 차지했다. 중심엔 '롱패딩'이 있었다.
2016년 김 회장은 '롱패딩' 출시를 결심한다. 원래 운동선수를 위한 '경기장용 의류'였는데 라이프스타일 캐주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해 여름 테스트 차원에서 5~6만벌을 만들어서 판매했는데 8월에만 2만벌을 팔았다. 김 회장은 "당시까지는 많이 팔아봐야 한 달에 1만장이었다"며 "그해 단일 모델로는 20만벌, 롱패딩 통틀어선 40만벌을 팔았다"고 했다.
이때부터 김 회장은 '디지털'을 고민했다. 롱패딩의 인기 비결엔 10~20대의 SNS를 통한 입소문도 큰 영향을 줬다고 판단해서다. 2018년 유발 하라리의 미래 관련 서적 '호모데우스'를 우연히 손에 쥐게 된 것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책에서 '미래는 디지털미디어의 역사'라고 말했다"며 "글의 시대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성공한 것처럼 앞으로 디지털을 잘 쓰는 사람이 리드할 것이라는 말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현재 F&F는 제품 디자인, 생산, 물류, 마케팅, 판매 전 영역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예컨대 디자인의 경우 과거엔 카탈로그를 만들어서 공장에 보냈다면 지금은 작업지시서를 시스템에 올려서 공장에 전한다. 매장에 제품을 보내고 재고관리를 하는 전 과정도 '빅데이터'에 기반해 컨트롤하고 있다. 1000명 정도의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온라인 마케팅 영역에서도 실시간으로 각 인플루언서의 성과를 분석,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김 회장은 "데이터를 찾아보면 유행, 사람들의 관심 등을 다 알 수 있다"며 "디지털마케팅은 과거 전통 매체와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디지털 담당 직원만 30명이 있다. 솔루션 비용으로만 매년 100억원 이상 지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 또 한 번 크게 판이 바뀔 것"이라며 "내년에는 직원들이 일하는 데 방식에서도 AI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화는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전 세계 103개 패션기업(중국기업 제외) 중 영업이익으로는 F&F가 23위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관련해선 세계 1위에 올랐다. 김 회장은 "몽클레어, LVMH(루이비통) 등 최고의 명품기업들도 F&F보다 아래"라며 "비용과 결과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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