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6월 29일, 62년간 자국 대학 입학 때 인종 문제를 고려해 온 입시 정책인 ‘Affirmative Action(인종 등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양성, 인종 간 차별 철폐를 명분으로 흑인·히스패닉 등을 우대하면서 백인과 공부 잘하는 아시아계를 역차별한다는 논란을 불러온 정책이 폐기되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입시에서 ‘3불(不)’의 하나인 기여입학제를 돌아본다. 입시에서 정원 외 일정 비율만큼 대학에 금전적 기여 등을 할 경우 입학을 허용하는 것이다. 과거 개발 연대에 ‘뒷문’으로 은밀히 입학시킨 것을 양성화하는 측면도 있고, 대학의 재정난을 타개할 현실적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충분한 사회적 공론을 거쳐야 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냉철하게 토론도 못 할 사안인가, 바로 검토라도 해 볼 만한가.
기여입학제는 나랏돈을 쓰지 않으면서 이런 대학을 정상화할 수 있다. 기존의 ‘정원 외 1%’ 식으로 제한하면 기여 입학생으로 불이익을 받는 수험생도 없다. 가령 서울의 유수 사립대에 정원 외로 30~40명 정도 학생을 더 수용하면 학과 배정에 따라 해마다 수백억원 이상, 최대 1000억원대의 특별 교비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돈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용 제한, 회계 처리 공개를 원칙으로 하면 된다. 이 교비의 60%는 재학생 장학금, 20%는 실험 실습 장비 보강 등 강의 연구 비용, 20%는 인건비 이런 식이다. 그렇게 300억원을 일반 재학생 장학금으로 쓴다면 연간 1000만원씩, 3000명이 혜택을 받는다. 동결된 교직원 임금도 올려 줄 수 있다. 기여입학 비용은 다른 지출로 전용을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여입학제를 하는 대학에는 모든 정부 지원을 끊는 것도 좋은 보완책이다. 입학 기여금으로 대학 재정에 숨통을 틔우려 하든, 지금처럼 정부 보조금에 기대든 대학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지원 학생의 자격을 최소한으로 정해 기여만으로 가능한 입학을 막아도 된다. 가령 기부금으로 학생을 수용해도 수능 최저 등급, 내신 최저 등급 등 일정 기준선 안에서 한다면 대학 면학 분위기도 지킬 수 있다. 미국 등지에서 오래된 방식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음성적으로 ‘뒷거래(뒷문 입학)’로 했던 것을 투명하고 당당하게 양성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왜 수립됐고, 왜 정책으로 지켜져 왔나. 한국에서 교육의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만큼 개인의 성취 의지가 높고, 당대에 성공에 이르는 계층 이동의 사회적 사다리가 마련된 나라도 드물다. 교육을 잘 받고 노력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로 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그만큼 대학 진학의 문은 공평하고 대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입시에 응한다. 수시로 이리저리 변하는 정부의 교육 및 입시 정책에 불만도 많지만, 입시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의 큰 원칙이 지켜진다는 기본적 믿음이 있다. 3불 정책, 특히 기여입학제 같은 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 이런 믿음에 크게 기여해 왔다.
한국은 안 그래도 경제적 양극화 등 격차 심화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다양한 복지 정책, 누진세율의 세제, 국가 차원의 장학금과 공교육 강화 노력이 있지만 사회적 격차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물론 한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커지는 격차를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할 판에 부모 능력에 따라 대학 진학까지 달라진다면 소외된 청년들 좌절감은 어떻게 하나. 사회 통합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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