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김은경 '노인 발언'에 담긴 끔찍한 맥락

입력 2023-08-02 18:00   수정 2023-08-03 00:39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은 노인폄하가 아니라 노인혐오에 가깝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노년층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일상화된 탓일 게다. 놀라운 지점은 발언이 튀어나온 소위 ‘맥락’이다. 그는 지난달 말 청년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시절 “왜 나이 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아들이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 나이부터 평균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좀 다듬어서 표현하면 젊은 세대에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해야 하며, 청년과 노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아직 생각이 영글지 못한 나이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엉뚱하고 희한하다. ‘평소 자식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학교나 학원에서 이런 종류의 정치 교육을 받았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는 이어지는 설명에서 아들의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는 생각도 감추지 않았다. “(아들의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이기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에요.” 발언 직후 큰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맥락 연결을 이상하게 해 노인폄하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럴 의사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곧 60세가 되는데 왜 노인을 폄하하겠느냐고도 했다. 그래서 혁신위가 공개한 발언 전문을 놓고 그 맥락이라는 것을 살펴봤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자녀 언급 대목의 메시지는 “노인 투표권을 제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뉘앙스였다.

김 위원장이 곤경에 처하자 이번엔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거들고 나섰다. 그는 SNS에 “김 위원장 말이 맞다.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는 섬뜩한 글을 남겼다. 연령과 세대를 선거 득실과 표로 계산하고 재단하는 음습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과거 정동영, 유시민, 조국 등이 노인 참정권을 노골적으로 경원하며 쏟아낸 폭언들도 우연이 아니었다. 통상 특정 세대나 계층의 표를 얻으려면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민주당은 아예 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를 미워하고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반민주적 공상에 몸을 맡긴다. 이러고도 어떻게 ‘민주’라는 당명을 붙이나.

인간은 누구나 늙어간다. 선택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고령이 언제나 삶의 성취를 증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별이나 천대를 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약동하는 젊음이 빛난다고 오랜 세월 역경과 파란을 견뎌낸 주름살의 가치가 바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감과 저주를 퍼붓는 것은 조폭적 행패다. 40대 유권자의 야당 지지율이 높다고 여당이 그들을 핍박할 수 있겠는가. 뒷감당이 두려워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그런데도 유독 노년층을 향한 야당의 정치적 힐난이 심한 이유는 딱 하나다. 노인들을 얕잡아보기 때문이다. 양이 의원 말대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보복 투표’를 받을 날이 많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가족 사회 국가의 보조와 부양을 받는 처지여서 세금이나 축내는 존재로 여기는 것일까.

미래가 청년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청년들도 언젠가 늙는다.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 중심으로 세상 질서를 짜야 한다는 발상은 노인혐오를 제도화하고 사회적 유산의 전승을 부인하고 삶의 완성을 존중하지 않는 반문명이다. 우리 사회는 불가피하게 고령화로 간다. ‘경로 우대’ ‘노인 공경’이라는 말은 지금처럼 기대수명이 길지 않았고 젊은 세대의 인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때 공감을 받았다. 우대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 늘어나면 그 강도도 약해지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합리 운운하면서 노인 차등 투표까지 토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사람들이 발언의 맥락을 오해했다고 주장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그 ‘청년’과 ‘미래’라는 맥락에 전율과 공포를 느낀다. 오래 산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질병과 궁핍과 재난에 맞선 인류의 전진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은 고귀한 본성을 시궁창 같은 정치로 끌어내려서는 안된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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