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입력 2023-08-02 10:42   수정 2023-08-02 10:43


종종 음식을 남긴다. 그럴 때면 찬장을 열어 반찬 통을 살피면서 남은 양에 딱 맞는 통은 무엇일까 가늠한다. 이 눈대중은 자연스럽지만 일상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장하여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세계관을 빌려보자면, 우리가 음식을 담을 그릇을 결정할 때마다 또 다른 평행우주의 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명사 ‘그릇’의 단어 뜻은 총 3개다. 첫 번째는 우리 눈에 늘 보이는 음식을 담는 용도로써 그릇이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 번째는 첫 번째 의미의 물리적인 단위를 의미한다.

그릇이 처음 가공된 상태 그대로 용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콜드컵’을 예로 들어보자. 콜드컵에는 뜨겁지 않은 고체, 액체, 기체를 담을 수 있고 그 형태는 세로로 긴 원통형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는 형태여야 한다. 용량 또한 콜드컵 뚜껑이 닫히는 한도 내에서 결정된다. 너무 적거나 많은 양을 담으면 콜드컵은 효용 없는 짐이 되거나 안에 있는 게 흘러 넘치는 상황이 생긴다.

인간의 그릇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릇에 비해 버거운 일을 하려고 하면 깨지거나 모양이 변할 수 있고, 적은 양의 일을 하게 되면 남는 공간이 심심해 한눈을 팔 수 있다. 하고싶은 일이 많다면 그릇을 깊거나 넓게 만들어야 한다. 그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게 바로 경험과 거기서 나를 거쳐 간 생각들이다. 이는 업무적인 경력이나 세월에 비례하진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나는 22살이 되던 해 직계 가족의 암 선고 직후 그의 유일한 간병인이 되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가 있을 때마다 병원에 보호자로 쫓아다닌 와중에 학교를 다니고 공모전에 출전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겪고 친구에게 ‘그렇게 살면 평생이 외로울 것’이라는 악담을 듣고 의절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인간 군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최근엔 여러 사건을 겪으며 인간관계에서 ‘넘겨짚기’를 삼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모두의 그릇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내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MZ’에 대한 갑론을박이 심해졌다. 누군가 SNS에 ‘미디어에서 특이점을 극화해 만든 MZ 캐릭터를 조롱하는 동안 실제 MZ들은 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린 게 발단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명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봤기 때문에 MZ가 얼마나 별난 세대인지를 안다는 쪽과 대다수의 MZ가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남고 있는데 확증편향 된 캐릭터로 실제 MZ 세대를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쪽이다.

이는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단계인 Z세대와 선대가 정한 규칙대로 살아오다 갑자기 등장해버린 ‘신인류’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갈등이다. 더 윗세대, 회사로 치면 임원급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다. 그냥 ‘요즘 애들은 그렇다며?’ 하고 넘겨도 업무에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른 2022년 한국의 중위 연령이 밀레니얼 세대보다 조금 앞선 45세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결정의 기준을 마련한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그릇이 큰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슬픔과 이해관계가 많은 사람, 혹은 상상력을 체감하는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저 사람은 별난 사람이야’라거나 ‘이건 세대나 성격 차이라 어쩔 수 없어’라고 넘기거나 덮어버리는 바쁨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해보고자 하는 여유로움이다. 이 여유가 업무, 생존, 미래 계획 등에 치여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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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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