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허점 많은 한국형 디폴트옵션

입력 2023-08-09 17:14   수정 2023-08-10 00:18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1년간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달부터 국내에서도 본격 시행됐다. 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진 상품(디폴트옵션 상품)에 자동 투자되는 제도다.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강압이 아니라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넛지(nudge) 이론에 기반한다. 금융지식이 낮은 일반인이 퇴직연금을 방치해 놨을 때 운용 지시 권한을 전문가(연금사업자)가 슬쩍 넘겨받도록 해 수익률 제고를 추구한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 선진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디폴트옵션을 적극 시행해 지난 10년간 연평균 8~9% 수익률을 거둬 효과를 입증했다.

한국도 디폴트옵션 본격 시행으로 2017~2021년 연평균 1.94%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수익률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금융회사들도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연금자산이 대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자사 디폴트옵션 상품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적립금 방치 가능성 여전
하지만 국내 디폴트옵션이 연금 선진국처럼 제대로 작동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연금 선진국에서의 제도 성공 요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곳곳에 남겨둔 채 시행되고 있어서다. 디폴트옵션에 가는 경로부터 길다. 해외는 ‘가입자의 운용 미(未)지시 → 디폴트옵션 발동’ 2단계만 있지만 한국은 독특하게도 이 앞에 ‘가입자의 디폴트옵션 상품 사전지정(선택)’ 단계를 추가했다.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 논란을 확실히 없애겠다는 취지지만 사전지정을 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발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디폴트옵션을 발동하지 않으면 적립금은 이자가 매우 낮은 고유계정(현금성자산)에 계속 방치된다. 방치된 적립금의 수익률 제고라는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대목이다.

사전지정 대상 상품이 초저위험(원리금보장)부터 고위험 포트폴리오까지 6~7개인 점도 ‘선택 최소화’라는 디폴트옵션 기본 원리에 반한다. 대부분의 연금 선진국이 근로자가 디폴트옵션 상품 한 개만 선택할 수 있게 한 것과 대비된다.
원리금보장형 비중 낮춰야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을 포함한 것은 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법 개정 논의 때 은행·보험사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다. 한국 디폴트옵션이 실적배당상품만 허용한 미국·영국·호주 대신 원리금보장형도 인정한 일본 모델에 가까워진 이유다.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이 연 1~2%대에 머문 건 적립금의 85% 이상이 원리금보장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보장형이 남게 되면서 이런 트렌드가 굳어질 기반이 마련됐다. 실제 작년 11월부터 올 6월까지 시범운용 기간 디폴트옵션 가입 금액의 85%는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으로 몰려간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 이후 금리 급등으로 원리금보장형도 당분간 연 3~4% 수익률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구조로는 내년 이후 금리 하락기가 오면 퇴직연금은 다시 ‘쥐꼬리 수익률’로 회귀할 공산이 높다. 디폴트옵션 도입 후에도 가입자 7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수익률 제고에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한국이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형 디폴트옵션도 ‘성공적 넛지’가 되기 위해선 원리금상품 투자 비중 제한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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