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누군가 속삭인다…"너, 나한테 왜 그랬어"

입력 2023-08-10 17:52   수정 2023-08-11 02:55


기담 속 귀신들은 꼭 질문을 던진다.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하고 묻는 화장실 귀신은 기담계의 고전. 한때 유행한 ‘빨간 마스크’ 괴담에서는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어린아이에게 다가와 묻는다. “내가 예쁘니?” 이런 기담이 공포스러운 지점은 마치 선택을 잘하면 안전하게 위기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기대를 기어이 배반하고 만다는 데 있다.

최근 읻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여름기담>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는 ‘매운맛’과 ‘순한맛’으로 나뉜 두 권짜리 소설집이다. 기묘하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모았다. 귀신의 질문이 그렇듯, 어느 맛을 골라 읽어도 등골이 서늘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순한맛은 “충분히 무섭지만 순한 이야기”, 매운맛은 “작정하고 무섭게, 독한 이야기”다.

소설집에는 이주혜 정선임 범유진 전예진(순한맛), 백민석 한은형 성혜령 성해나(매운맛) 등 젊은 작가 8인이 참여했다. 각각 한 편의 단편소설과 작가의 말을 실었다.

책의 모양새도 기이하다. 표지는 마치 매운맛·순한맛 인스턴트 카레 패키지처럼 절취선과 성분표, 영양정보, 제조일 등을 담고 있다. ‘유기농’ 인증 표시 대신 ‘유기농담’ 표시가 붙어 있는 식이다. 책날개에 적힌 조리 방법은 이렇다. “1. 주변을 어둡게 조성해 주세요. 2. 분신사바를 통해 읽을 단편을 정합니다. 3.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며 독서에 매진합니다.”

매운맛의 경우 귀신과 저주, 괴물 이야기로 범벅일 거란 예상과 달리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성해나 작가의 ‘아미고’는 가까운 미래, 휴머노이드에게 일자리를 위협받는 스턴트맨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인공이 오싹함을 느끼는 건 로봇이 아니라 인간 스턴트맨을 로봇으로 착각한 것마냥 사지로 몰아넣기를 주저하지 않는 영화계 ‘인간’ 동료들이다. 그는 생각한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통상 감사와 애정의 문장이 적히는 ‘작가의 말’도 이 책에서는 남다르다. 백민석 작가는 ‘공포는 현실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태원 참사 추모 대회 바로 옆에서 평화로운 책 읽기 행사가 열리는 기이한 풍경을 전한다. 자꾸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는 사회. 괴담과 오싹한 공포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한 시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공포는 현실에, 이 사회에, 소설의 바깥에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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