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와이 古都 라하이나의 비극

입력 2023-08-13 18:07   수정 2023-08-14 00:11

19세기는 미국 포경업의 전성기였다. 석유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고래기름으로 불을 밝혔고, 기계의 윤활유로도 썼다. 포경선이 700여 척, 종사자가 7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허먼 멜빌(1819~1891)이 걸작 <모비딕>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 실패와 죽음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멜빌은 1841년 포경업 중심지였던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에서 포경선 애시쿠넷호에 몸을 실었다. 3년여 동안 고래잡이 선원으로 일하며 마르케사스 군도, 타히티, 하와이 등 남태평양 섬과 바다를 누빈 경험이 그의 작품들에 담겼다.

옛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마우이섬 서북쪽 해안도시 라하이나도 <모비딕>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원주민 언어로 ‘잔인한 태양’을 뜻하는 라하이나는 18~19세기 하와이 왕국의 가장 번성한 포구였다. 드나드는 포경선이 400척을 넘었다고 한다. 1845년 수도를 오하후섬 호놀룰루로 옮긴 뒤에도 라하이나 곳곳에는 왕국과 고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족 단위로 살고 있던 하와이 제도를 1795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한 카메하메하 1세의 궁전과 요새 잔해, 유서 깊은 와이올라 교회, 포경선 선원들이 묵었던 파이어니어인 호텔 등은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명소였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고래 그림과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혹등고래의 주요 활동 무대가 마우이섬 인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 8일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로 라하이나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인구 1만2000명의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12일(현지시간) 현재 산불 사망자가 최소 89명으로 늘어나 미국에서 100여 년 만에 최악의 산불 참사로 남게 됐다. 파손된 주택이 2200여 채, 재산 피해가 60억달러(약 7조9900억원)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이 많아 피해가 컸다고 한다. 와이올라 교회, 파이어니어인 호텔, 마우이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인 볼드윈홈 박물관 등이 모두 타버렸다. 1873년 기독교 선교 50주년을 기념해 심은 미국 최대 반얀트리가 살아남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마우이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는지.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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