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日의 만행이 기록된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가다

입력 2023-08-14 09:51   수정 2023-08-14 12:10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굽이진 골목 사이, 자세히 봐야 보이는 공간이 있다. 바로 2018년 8월 29일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박물관으로 일본제국주의 침탈과 친일파의 역사에 대해 기록이 전시돼 있다.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은 “독립 영웅과 운동을 기념하는 박물관은 많지만 정작 그들이 저항한 대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구체적으로 일제의 지배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박물관을 소개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박물관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계, 일본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 오로지 시민의 후원금만으로 설립됐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후원금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 1층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전시된 임종국 선생의 흉상과 저서가 눈에 띈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파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유명 문인들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친일문학론’은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실장은 “1989년 임종국 선생님의 고별 후 민족문제연구소는 선생님의 뜻을 그대로 이어 친일파 문제 제기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1층 왼편에는 ‘간토대학살 100년 은폐된 학살, 기억하는 시민들’이라는 일본 고려박물관과의 연계 전시가 마련됐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모든 벽면에 빼곡하게 사진과 글이 자리했다. 간토대학살은 1923년 9월 일본 간토 지역에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에서 시작됐다. 가옥 약 37만 채가 무너지고 약 10만 5천 명의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비난의 화살이 정부로 향할 것을 두려워했다. 이때 일본 정부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조선인에 대한 분노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당일부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폭탄을 들고 습격한다’ 등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바로 다음 날 선포된 계엄령은 조선인의 폭동을 더욱 사실인 것처럼 만들었고, 군대와 경찰뿐만 아니라 일본의 일반 민중까지 가세해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면 바로 죽이는 잔혹한 학살 속에서 조선인 외에도 중국인, 장애인 심지어 일본인까지도 희생됐다. 조선인박해사실조사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살해된 조선인의 수만 2,611명으로 밝혀졌다.



전시장 중간에는 조선인 여성이 폭탄을 숨기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소개한 글과 그림, 간토 계엄지역 내 경비배치요도 등 다양한 사료를 볼 수 있었다. 특히 2021년 일본에서 새롭게 발견된 30m 길이에 달하는 기코쿠의 ‘간토대진재 두루마리 그림’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실물은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최초로 전시 중이다.




전시의 기획 취지에 대해 김승은 실장은 “참혹한 역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벌어지는 ‘공공의 적 만들기’ 같은 사회적 폭력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전시는 지난 1일부터 오는 10월 29일까지 진행된다.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4가지 주제로 구성된 상설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주제는 ▲일제는 왜 한반도를 침력했을까 ▲일제의 침략전쟁, 조선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 시대 다른 삶-친일과 항일 ▲과거를 이겨내는 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색다른 점은 현시대의 역사청산운동을 다루는 마지막 주제 전시의 사료가 모두 자석으로 부착됐다는 점이다. 전시해설가 이수진 씨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문제들을 자석으로 붙이고 문제가 해결되면 자석을 뗀다”며 “언젠가는 모든 자석을 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김 학예실장은 가장 소개하고 싶은 사료로 교토 히노데신문에서 신년 부록으로 배포한 ‘일출신문조선쌍육’을 꼽았다. 일출신문조선쌍육은 조선을 주제로 한 주사위 놀이판이다. 놀이방법은 말판이 되는 쌍육판과 말, 2개의 주사위를 던져 데라우치 총독 칸에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지금의 보드게임과 유사한 이 놀이판은 일본이 조선의 역사를 왜곡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출신문조선쌍육은 일본의 조선 역사 왜곡 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가장 오른쪽 아래 칸에는 조선인을 변발한 청나라 사람으로 생뚱맞게 그려져 있다. 또한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을 당시 용감한 일본장수의 일화,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등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화를 이용해 원래 조선이 일본의 땅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김 실장은 “일본은 완전히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조선을 침략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역사 왜곡 내용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식민사관을 완전히 뿌리 뽑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작은 공간에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든 눌러 담으려는 애정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다만 박물관의 묘미인 체험 프로그램이 적어 아쉬웠다. 박물관 한 켠에 친일인명사전을 열람하고 조선인들의 신문조서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대부분 눈으로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오히려 작은 공간이 주는 장점도 있었다. 관람이 끝난 후 1층으로 내려와 보니 로비에는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설가와 관람객들은 인상 깊었던 점, 보완할 점 등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김 학예실장은 “많은 질문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관람객이 전시의 주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대화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계속 변화 중”이라고 말했다.

광복 78주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뼈아픈 과거를 비춰 오늘날 우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박물관은 매주 화~일요일 10시 30분부터 18시까지 개관한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조은정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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