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저가 위스키 제조사인 골든블루가 ‘국산 위스키’ 논쟁에 불을 붙였다. 스코틀랜드산 몰트 원액을 부산의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에 대해 ‘K(코리안)-위스키 프로젝트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골든블루가 홍보에 나서자, 주류업계 일각에선 “진짜 국산 위스키를 제조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 이번 제품은 ‘무늬만’ 국산 위스키이고, A부터 Z까지 증류 및 숙성 과정을 모두 한국에서 진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체 위스키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놓겠다는 설명이다. 부산 기반의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다 골든블루를 인수한 박 회장은 이 같은 표현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2019년 골든블루 출시 10주년 자리에서 “위스키 원액을 직접 제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고, 같은 해에 부산 기장에 관광형 증류소 건립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태껏 이행된 약속은 없다.
이에 대해 골든블루 관계자는 “2016년부터 K(코리안)-위스키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시험을 진행해 오고 있다”며 “6년 동안 마스터 블렌더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해리엇 와트 대학교에 장학생들을 보내 양조·증류학과 석사학위(Master of Science in Brewing and Distilling)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국산 위스키 개발 의지를 다져왔다”고 말했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카발란에 대해 ‘마케팅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위스키마다 특정 지역의 기후(보리는 대체로 수입산을 사용하므로 토양의 특징은 거론하지 않는다)를 반영한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카발란 마케팅의 핵심이다.
스코틀랜드의 온화한 기후와 달리 대만은 습하고 무더워 천사의 몫(Angel’s Share, 위스키 숙성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원액이 증발하는 현상)이 크므로 연산(年産)을 표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최고급 카발란에 들어가는 원액의 숙성 기간은 6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든블루는 더 그레이트 저니 셰리 캐스크를 내놓으면서 “스코틀랜드의 겨울, 대만의 여름 특성을 모두 가진 부산 기장에서 위스키 원액을 숙성했다”고 강조했다. 카발란처럼 연산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스코틀랜드의 어떤 원액을 수입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카발란은 그나마 자체 증류소에서 위스키 원액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골든블루의 ‘과장 마케팅’이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김포에 자체 증류소를 만들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창수위스키 등 K위스키 제조사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골든블루가 4년 넘는 숙성 기간을 강조한 것은 숙성 기간이 1년 안팎에 불과한 김창수위스키 등을 겨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롯데칠성음료, 신세계L&B도 제주에 K위스키 증류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꼭 국산 위스키를 만들어야 하나? 이 질문에 간단히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위스키 제조 기술이 반도체나 2차 전지처럼 국가 명운을 좌우할 핵심 테크놀로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나라 중 위스키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 중 하나다. 위스키에 불리한 세금 구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류 대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소주와 맥주만 파는데 주력한 탓도 크다. 무늬만 K위스키 말고, 진짜 K위스키가 하루빨리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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