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형 로펌 노동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변호사는 매주 월요일이 괴롭다. 고객사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팀 회의가 한 번 시작되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이사의 형사처벌 기준이 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법안 한 문장, 한 문장이 ‘등’으로 뒤덮여 있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2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이 고용노동부가 만든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분석한 결과 12장짜리 법령에 ‘등’이 1629개 쓰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673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다. 세부적으로 어떤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지는 고용노동부령인 ‘산업안전보건 규칙’에 위임하고 있다. 실무자가 해당 규칙을 위반하면 사업주가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업무상 재해 보상 절차와 기준이 담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에는 등이 160개, 관련 업계에서 모호한 기준으로 지적받는 13장짜리 주택법 시행규칙에는 131개 쓰였다. 다른 법령과 비교했을 때 모호한 표현이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도 고민이 많다. 모호한 법령의 내용을 추측하면서 다양한 예방책을 마련하다 보니 고객사의 불필요한 지출이 커져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제88조가 가장 모호한 규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동력으로 작동되는 기계에 스위치·클러치 및 벨트이동장치 등 동력차단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연속하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기계로서 공통의 동력차단장치가 있거나 공정 도중에 인력에 의한 원재료의 공급과 인출 등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규칙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등 동력차단장치’라고 하면 어떤 장치까지 법령상 허용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며 ”‘필요 없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법령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관련 법령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주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입건 및 처벌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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