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형태로 볼 때나 업무 성격상 법정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이 예정돼 있는 경우 노사 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미리 정한 후 임금도 미리 산정하는 방식을 포괄임금제라고 한다. 매월 일정 금액의 제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하는 식이다. 추가근무 수당 계산이 어려운 일에 많이 적용된다. 포괄임금제(포괄임금계약)를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나와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 일각에서도 걱정하고 있다. 추가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즉 포괄임금제 악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직업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노사 간에 초과·연장 수당을 미리 계산하는 포괄임금제를 법으로 원천 금지하는 게 타당할까.
가령 한국의 사무직에서는 추가근무수당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있어도 통상 시급의 150%가 아니라 교통비 등 다른 명목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고용주)측에서 연봉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 00시간의 추가근무수당을 포함한다’라는 조항을 끼워 넣는 식이다. 일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근로자는 회사(작업장)에 도착하는 순간 노동이 시작되고, 명시적으로 회사 문을 나서는 때까지는 근로 시간이라고 봐야 한다. 일거리 확보와 배당은 사측의 책무다. 그런데도 직접 작업을 하지 않고 대기 또는 준비 중인 시간이 길다고 근로시간에서 빼거나 포괄적으로 적게 산정해 임금 계산을 한다면 노동 착취다. 사무직은 많은 경우 추가근무시간 산정이 어렵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추가근무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포괄임금 계약을 맺는다면 근로기준법 취지에 맞지 않다. 공무원에 대해 포괄임금제를 하지 않는 것도 공무원들은 일하는 시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어려운데다 이 제도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공직에도 하지 않는 것을 민간에 허용해서 악용의 소지를 만들어선 안 된다. 야당(더불어민주당)에서 사용자에게 근로자의 업무개시와 종료시간 측정·기록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낸 것도 근로 시간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포괄임금제에 대해 법원이 판례로 인정을 해 왔고, 노동현장에서도 노사 간 합의로 정착된 관행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최근 법원은 병원 내 장례식장에서 일했던 장례지도사들이 낸 포괄임금 관련 소송에서 병원 측 손을 들어주며 이 제도를 인정했다. 장례식장에서 격일로 24시간 근무하는 장례지도사들 주장대로 포괄임금제를 무효화하면 이들의 월급은 34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치솟을 판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비업무 시간에 대해 “업무 밀도가 떨어지고 대기 시간이 길다”며 포괄임금 계약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법원은 공항에서 수하물 X선 전자태그 부착 용역업체 직원의 소송 건에서도 “항공기 도착 사이 대기 시간이 길고 정확한 근무시간을 사전에 확정하기 어렵다”며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경직적 주 52시간제도와 근로 현실의 간극을 메워 노사 간 갈등을 완화하는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노동계 일각에서도 찬성하고 있다. 포괄임금제에서는 근로자가 주어진 시간 내에 업무를 완수하려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야근과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이 제도 자체가 무조건 근로자에 불리한 것도 아니다. 무상 노동을 유발한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