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박…'BTS 슬리퍼'로 시작된 '일본 침공'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3-08-30 14:41   수정 2023-08-30 15:29

전국에 매장 2162개(2021년 말 기준)를 운영 중인 일본의 시마무라. ‘아베일’, ‘버스데이’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일본 2위 의류 유통 기업(1위는 유니클로)은 지난 6월부터 매달 바이어 4명을 한국에 파견하고 있다. 40대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이들이 받은 특명은 “K브랜드를 발굴하라”다.

패션, 화장품, 식품 등 한국 브랜드의 일본행(行) 러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K의 일본침공’이라 할 만하다. 우리 기업들이 일본의 유통사를 찾아 가까스로 입점을 성사하는 게 아니라 이토요카도 등 굴지의 유통업체와 미쓰비시, 이토추 같은 종합상사까지 나서 K브랜드 ‘모셔가기’에 혈안이다.
일본의 K브랜드 '모셔가기' 경쟁
30일 국내 패션 e커머스 하고L&F 관계자는 “일본의 한 대형 종합상사부터 우리가 소유하거나, 투자한 패션 브랜드 ‘마뗑킴’, ‘드파운드’의 일본 판권을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수십 개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판매하는 콧대 높은 일본 상사 기업이 먼저 찾는 것도 놀라운데, 일본 내 판권이라도 사겠다는 제안을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토요카도, 이토추상사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K브랜드를 직접 찾아 나서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국내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일본 무역 전문업체 JUMBO-K의 김성일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몇몇 한국 브랜드가 도쿄 등 대도시에 플래그십 매장을 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기업들이 직접 K브랜드 발굴에 나서는 건 사실상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내 ‘K 소비재 열풍’은 여러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일본의 지난해 수입 화장품을 국가별로 따져본 결과 한국이 30년간 독주하던 프랑스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의 30대 이하 젊은 세대가 K소비재를 멋지고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양국 소비시장이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외교적 난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TS 슬리퍼에서 시작된 신한류
코로나19의 공포가 한창이던 2021년 여름. 도쿄의 한 시마무라 매장에서 코로나 사태 전까지 흔하지 않던 일이 벌어졌다. BTS 멤버들의 캐릭터가 새겨진 슬리퍼 3000족이 이틀 만에 완판됐다.

BTS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긴 했지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이 정도로 인기가 있을 줄은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시마무라의 신발 바이어는 즉각 벤더사에 요청했다. “한국의 김상(일본 전문 무역회사 JIMBO K 김승일 대표)한테 추가로 3만족을 빨리 보내달라고 하세요.”

일본의 소비재 시장은 그동안 난공불락이나 다름없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기업들도 수십 년간 어려움을 겪은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3년을 거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일본에 한국형 네이버스토어를 상륙시킬 예정인 네이버 재팬이 ‘마뗑킴’ 등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조처다.

K소비재의 인기는 일본 e커머스 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한국 상품에 강점을 가진 큐텐재팬은 올 상반기에 회원수 2300만명을 돌파하며 아마존재팬, 라쿠텐에 이어 3위권으로 올라섰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5위권으로 분류됐다.

큐텐재팬에서 판매되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만 400여 개에 달한다. 이는 전체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80%가량이다. 큐텐재팬 관계자는 “지난해 K뷰티 거래액은 2019년 대비 3.5배 불어났다”며 “올해도 한국 화장품의 판매 열기가 지속되고 있고, 패션·식품·엔터 분야 한국 상품의 올 상반기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최소 3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e커머스 순위도 바꿔놓은 K화장품
요즘은 e커머스뿐 아니라 일본 소비 시장 구석구석에 한국 상품이 파고들고 있다. 일본 유통업계 관계자는 “홋카이도의 산골 편의점에까지 소주 등 한국 상품이 퍼져 있다”며 “도쿄 도심의 뽑기(키차키차) 상품은 K팝 아이돌의 굿즈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대(對)일본 소주 수출액 증가율(전년 대비)은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22.4%, 27.2%에 달했다.

매운맛 라면이 인기를 끌면서 삼양라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가 이온 매장에 등장할 정도다. 삼양식품 일본 법인의 매출은 2020년 82억원에서 지난해 208억원으로 2.5배 불어났다. 이 기세는 올해에도 이어져 상반기 매출(116억원)이 35.5% 증가했다.

한동안 어려움을 겪던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힘을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이 지난해 7월 일본 택시(MK자동차)로 채택됐고, 삼성전자 ‘갤럭시’의 일본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0.5%로 2위에 올라섰다
"일본의 복잡한 유통 단계 이해할 수 있어야"

4차 한류열풍이 불어온 일본 내 K소비재의 인기가 장기 대세로 굳어질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에 관해선 관련 업계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대세론자들은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K브랜드 발굴에 먼저 뛰어든 데 주목한다.

이토요카도, 이온, 시마무라 등 굴지의 일본 유통업체 바이어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성수동에 들러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K소비재를 안 팔 수가 없겠구나’란 생각을 너도나도 한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부 업종의 경우 현지 대형 유통망에 제대로 올라탄 곳은 아직 없다는 점에서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패션업종이 대표적이다. 무신사 글로벌, 젝시믹스, 디스이즈네버댓, 널디 등이 2021년부터 도쿄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거나 자사몰 형태로 일본에 진출하긴 했지만,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성일 대표는 “국내 브랜드 대부분이 직접 진출을 선호한다”며 “수입상→2차 벤더→1차 벤더→유통사로 이어지는 복잡한 일본 유통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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