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가을 사랑편지만큼 아찔한 '파드되 리프트'

입력 2023-09-01 18:00   수정 2023-09-02 00:33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의 시와 김민기의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계절이 왔다. 가을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 쓰기 좋은 공기와 온도를 품고 있다. 요즘은 우체국 앞에서 서성이거나 창문가에서 편지를 쓰는 일보다는 휴대폰 창을 열어 숫자 1이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많겠지만, 그럼에도 가을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은 문장을 적어 보내고 싶은 계절인 건 변함없다.

발레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게 작품 전체를 이끄는 중요한 장면인 작품이 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존 크랭코의 안무작 ‘오네긴’(Onegin, 1965)이 그렇다. 시골 마을에 잠시 내려온 도시 남자 오네긴을 보고 반한 순박한 아가씨 타티아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렵다. 사랑에 빠진 타티아나는 급기야 거울 속에서 오네긴이 나타나 함께 춤추는 환영에 휩쓸린다. 타티아나의 환상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두 사람의 리프트 장면이 연출된다. 타티아나가 오네긴의 손끝에 앉아 하늘 높이 들어 올려지는 것이다.

발레에서 2인무는 ‘파드되(pas de deux)’라고 부르는데 파드되의 꽃은 리프트다. 호흡과 에너지, 몸을 쓰는 방법에서 오래 훈련한 사람만이 파드되를 출 수 있다. 파드되의 난도는 하늘로 올라갈수록, 남녀 무용수의 몸이 서로 떨어질수록 높아진다. 가장 난도가 높은 건 두 손이나 한 손으로 상대 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다.

앞서 말한 발레 ‘오네긴’ 1막의 편지와 거울 장면에서 리프트는 오네긴이 한 손을 하늘로 뻗어서 그 위에 타티아나를 앉히고, 다른 한 손은 타티아나의 다리를 잡아서 동작의 안정성을 높인다. 그래서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찔하게 관객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파드되 리프트는 단연 한 손으로 드는 ‘원 핸드 리프트’다. 대표적으로 ‘돈키호테’ 1막과 ‘스파르타쿠스’ 2막에 등장하는 리프트를 꼽을 수 있다. 한 다리를 축으로 세우고 다른 다리를 뒤로 뻗는 동작을 ‘아라베스크’라고 부르는데, 이 리프트에서 여성 무용수는 공중에서 아라베스크를 한다는 느낌으로 떠 있어야 한다.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의 골반을 한 손으로 받쳐서 들어 올려야 한다.

그런데 같은 원 핸드 리프트 동작이라도 ‘돈키호테’와 ‘스파르타쿠스’의 그것은 사뭇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돈키호테’에선 연인인 이발사 바질과 여관집 딸 키트리가 춤을 추는 경쾌한 분위기지만,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노예가 된 검투사 남편 스파르타쿠스와 아내 프리기아의 비통에 찬 마지막 춤사위다. 같은 동작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창작자가 작품 안에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가에 따라 같은 동작이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파드되의 리프트는 추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아찔한 만큼 짜릿한 희열을 준다. 그 아슬아슬한 기교와 예술적 감성은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의 편지를 쓸 때의 감정과 닮았다. 그래서 가을에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가보다. 한 해가 다 지나가기 전,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기 전, 올해 마지막으로 남은 온기를 온통 편지에 담아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든, 휴대폰 앞에서든, 그 서성이는 우리의 모습을 발레 작품 속 파드되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이 예술을 통한 교감이자 공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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