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관심 없다"…퇴직연금 수익률 높인다더니 [빈수레 디폴트옵션?]

입력 2023-10-07 13:51   수정 2023-10-07 14:17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목돈이 긴 시간 방치되지 않도록 돕는 '디폴트옵션'이 시행 2개월을 맞았다. 하지만 낮은 수익률 등이 부각되면서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가 살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투자의 최대 적인 '무관심'이 퇴직연금 시장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제도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와 국민, 퇴직연금사업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빠르게 늙고 있다. 2030년이 되면 국내 직장인 평균 나이가 50세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다. 올 들어 '만 나이 60세'를 찍은 베이비붐 세대 막내(1963년생)들은 2030년을 기점으로 나라가 인정하는 노인이 된다. 노인인구의 증가가 눈 앞에 뻔하게 된 셈이다.

노후 안전판 중 하나인 퇴직연금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닌 '수익률'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오르는데다 물가까지 요동치고 있어 일정금액을 지속적으로 받는 퇴직연금이 노후대비에 충분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퇴직연금 수익률을 확 끌어올리겠다는 미션을 갖고 지난 7월 시행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은 여전히 국민 관심 밖이다. 대다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디폴트옵션'에 대해 관심이 없는데다, 지정을 했다해도 원리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 상품에만 몰리고 있다.
귀찮거나 불안하거나…원리금 보장형에만 '우르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에 따르면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을 굴릴 금융 상품을 한 번도 선택하지 않은 경우' 혹은 '기존에 운용하던 금융상품이 만기됐는데도 상환금에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경우' 적용된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는 디폴트옵션 상품 선정이 의무다. 하지만 법에서 선택 기한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고 위반 시 처벌한다는 조항도 없어서, 사실상 강제성은 떨어진다.

디폴트옵션은 예·적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의 만기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해당 상품이 만기를 맞고 4주가 지났는데도 가입자가 내버려두면, 은행·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는 가입자에게 '2주 뒤부터 만기 상환금이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된다'고 통지를 한다. 만기 상환금액은 대기성 자금(투자되지 않고 현금으로 남은 자금)으로 남아서 낮은 금리로 운용되다가 6주 뒤에야 디폴트옵션 적용을 받는 셈이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하는 즉시 적립금이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되는 게 아니란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전문성과 의지 등을 갖춘 '연금 고수'들은 적립금이 대기성 자금으로 편입되도록 둘 리가 없다. 오히려 디폴트옵션 상품이 일반 상품 대비 수수료가 낮고 금리가 높단 점을 활용해 대기기간 돌입 전 먼저 매수하는 이들도 많다. 때문에 실상 디폴트옵션의 대상자는 수익률에 둔감한 사람들이고 해석되기도 한다. 제때 운용 지시를 하지 않는 경우 이 제도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은 유예기간까지 포함하면 도입 이후 1년 3개월여의 시간을 벌었는데도 국민의 인식 수준은 저조하다. 지식공유 서비스인 네이버 지식인에는 '내 퇴직연금 계좌가 어디 있는지, 어느 유형의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는지도 모른다', '초저위험 상품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인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꼭 지정해야 하는 것이냐' 등의 글이 최근까지도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초저위험 상품 지정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올 2분기 말 기준 디폴트옵션 상품 판매·운용실적에 따르면 총 적립금액은 약 1조1019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약 8000억원 증가했다. 가입 상품을 살펴보면 디폴트옵션 가입자 200만여명 중 무려 177만여명이 초저위험 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초저위험 상품에 몰린 적립금은 9393억원으로 전체의 85.2%에 달했다.

자칫 투자형 상품을 선택했다가 퇴직연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안정적인 상품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작년 고금리 상황 디폴트옵션 상품 지정이 시행된 시기 초저위험 상품의 경쟁력이 일시적으로 높았던 부분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년 수익률 평균 5.8%…위험등급 높을수록 수익률↑
원리금 보장형 쏠림 현상은 둘째 치고, 수익률 현황은 어떨까. 상품별로 비교를 해 보면 위험 등급이 높은 디폴트옵션 상품에 투자할수록 평균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집어 해석하면 초저위험 상품에 돈을 넣는 경우 수익성은 낮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리금 보장형 편중 현상이 저수익성의 악순환을 부른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기준 판매·운용 중인 223개 디폴트옵션 상품의 6개월 수익률 평균은 약 5.8%로 집계됐다. 정부는 1분기(3.06%·연간 12.41%)에 이어 1년 목표수익률인 6~8% 대비 높은 수익률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단 위험등급별 6개월 평균 수익률은 △초저위험 2.26% △저위험 4.23% △중위험 6.09% △고위험 8.88%를 기록했다. 물론 제도 초기의 단기 운용 성과인 만큼 섣부른 결론은 위험하다. 다만 현재로선 위험등급이 높아질수록 수익률도 상승하는 등 규칙적인 흐름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만으로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결코 물가 상승률을 이겨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최종진 미래에셋증권 연금본부 본부장은 "불안정한 금융시장과 금리 상승 영향으로 예·적금의 매력이 높아졌지만 생애 주기에 적합한 실적 배당형 투자 상품으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며 "결국 연금자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익률 제고 방안은 글로벌 자산 배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예견된 결과…심각한 사태 초래될 수도"
금융투자업계는 제도 도입 전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예견됐다고 꼬집었다. 원리금 보장형이 포함된 디폴트옵션은 치열한 업권 간 경쟁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해석이다. 디폴트옵션 도입 당시 은행과 보험사들은 투자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원리금 보장형 포함'을 주장했고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수익률 개선이 어렵다며 이를 반대했었다. 업권 간 경쟁은 정쟁으로도 확대돼 지금의 제도가 됐다. 당시에도 국민 돈을 굴리는 중대 사안이 업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이 거세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현금성 자산들을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투자자산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독려하고자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는데 은행 예금형 상품이 들어오면서 그 취지가 왜곡됐다"며 "결국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나, 하지 않나 크게 차이가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전지정운용의 9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에 집중된 결과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무관심에 의한 방치가 현 제도로 인해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리금 보장형이 포함된 것은 제도적 결함이므로 적격상품 유형에서 아예 빼거나, 운용 기간을 짧게 한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퇴직연금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사업자 감독기구인 금감원은 아직 디폴트옵션이 본격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씨 뿌리는 단계에서 열매 수확을 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폴트옵션을 지정할 수 있도록 홍보를 활성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을 지정해야 하는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약 636만명(DC 353만명·IRP 283만명)이다. 이 가운데 디폴트옵션을 지정한 가입자 비중은 31.45%에 불과하다. 아직 10명 중 6명 이상은 디폴트옵션을 지정하지 않은 셈이다.

손재형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 과장은 "아직 디폴트옵션 도입 초기라 사람들이 성향이 한 번에 바뀌진 않고 있다"며 "현 상황에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펴는 게 가장 필요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금융기관은 연말까지 TV 광고, 유튜브 광고 등 퇴직연금 홍보 콘텐츠를 제작해 집중 홍보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너무 안전한 쪽으로만 선택하는데 어느 정도 위험을 감내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상품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 위험성이 있지만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많이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국회의원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노후소득이라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가입자들은 자금운용목표를 다소 보수적으로 잡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제 여건의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 또한 연금 수익률으 올리기보다 원금을 지키자는 쪽에 관심이 컸으리라는 분석이다. 윤 의원은 "추후 경제여건 변화에 따라 디폴트옵션 상품선택에도 추가 이동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실물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디폴트옵션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출발부터 한계는 있었지만 디폴트옵션의 방향성은 열었다고 평가한다"며 "최근에는 주식 시장이 하락하면서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이 쏠리고 있지만 이후 장이 살아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올라가면 그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계속)

차은지·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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