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익숙함은 오직 연습에서 나온다

입력 2023-10-04 10:00   수정 2023-10-04 10:02


아버지가 생을 마감했다. 음력으로 2003923. 올해가 20주기다. 부음은 거래처와 점심에 폭탄주를 많이 마셔 잠깐 졸고 나서 들었다. 더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웠다. 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로 장례식장 등 장의 절차 논의를 끝냈다. 아버지는 당신의 방에 언제나처럼 그대로 누워계셨다. 눈을 뜬 채 미간을 약간 찌푸린 모습이 당장 일어나 지난주에 오지 않은 것을 질책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못 할 짓이 사람 기다리는 걸 텐데 찾아뵙질 못한 게 후회됐다. 뒤이어 도착한 남동생에게 어머니가 눈을 감겨드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중풍으로 오른쪽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는 5년째 누워 지냈다. 말씀하지 못해 주로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눴다. 머리맡의 잡기장에는 나와 지난주에 나눈 뒷장에 한 글자만 쓴 장이 더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자다. 남기고 싶은 마지막 필담은 그렇게 유언이 됐다. 누워서 종이를 보지 못하고 떨리는 왼손으로 쓴 글씨는 글자라기보다 차라리 그림이었다. 획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읽었다. ‘익힐 습()’자였다. 성격 급한 아버지를 닮은 속필(速筆)이자 달필(達筆)을 나는 언제나 글자를 마무리하기 전에 알아맞혔다. 한참이나 그리듯 썼을 그림 같은 글자가 뭘 뜻하는지는 그래서 대번에 알아봤다. 워낙 여러 번 말씀하셨던 글자였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인용한 고사성어가 여조삭비(如鳥數飛)’. 그래서 가장 많이 들은 성어다. ‘셀 수()’ 자는 여기서는 자주 삭으로 읽는다. ‘새가 자주 하는 날갯짓과 같다라는 말이다.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힘을 비유한 말이다. 아버지는 배운 사람이 부족함을 안다. 그러니 배운 사람이 더 배운다.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 알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끓임 없이 공부해야 한다며 평생 배우고 익히기를 강조했다. “공자에게 익힘은 배움의 실천이다라고 가르친 아버지는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날갯짓해야 하는 것처럼 배움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학습(學習)’은 공자가 처음 쓴 말이다. 논어(論語) 학이편 첫머리에 나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주자(朱子)는 논어 해설서에서 익힐 습연습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은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하는 것[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이라고 풀이했다. 저 성어는 저기서 유래했다고 일러줬다.

아버지는 ()은 습()과 함께 하는 것이다. 주자는 배울 자를 본받는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깃털 우()’자에 흰 백()’을 더한 자다. 갑골문으로는 날 일()’자다. 날마다 새가 날갯짓을 익히는 것을 뜻한다. 배움과 익힘은 반복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배움은 남의 것이다. 본래 날 수 있는 새도 날마다 익혀야 비로소 날 수 있는 것처럼 을 해야 비로소 네 것이 된다. 배움이 온전한 내 것이 되는 방법은 오직 연습뿐이다. 몸으로 익혀 눈을 감고도 그대로 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연습해야 한다. 익숙해야 제대로 된 일을 한다. 익숙함은 오직 연습에서 나온다라며 학습하기를 주문했다. 특히 인간은 모방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려서는 부모의 행동을 본받고, 자라면서는 선배나 선생님을 비롯해 앞선 이들을 모델로 삼아 자신을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며 끊임없는 학습을 당부했다.

학습의 흥미와 의욕은 지식에 대한 열정과 탐구심에서 온다. 공부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 끈기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부의 주도권을 잡고 학습에 집중해야 하기에 절대 필요한 인성이 자발성이다. 자기 스스로 하려는 마음인 자발성은 타고난 성향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 작용으로 형성된다. 타고난 성향이 호기심, 도전 정신, 자기 신뢰 등이고, 환경적 요인이 부모의 양육 방식, 학교 교육, 사회 문화 등이다. 말귀를 알아들으면 무엇보다 먼저 깨우쳐야 할 소중한 품성이다. 내가 나서서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 깨우치기 어려운 성품이다. 손주가 노력한 결과에 대해 칭찬하고, 노력을 인정해주는 일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높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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