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무 그늘의 고마움

입력 2023-10-05 19:08   수정 2023-10-06 00:03

교정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목백일홍은 오늘도 아름답다. 이 꽃나무는 그늘조차 찬란하다. 삶의 고민이 많은 이들은 나무 그늘로 가보라. 그늘은 걱정을 덜어주고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꽃나무의 꽃들은 떨어져도 꽃이다. 찬란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며 내년에 새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번민의 각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생의 살이 새로 돋는다. 마음 찬란찬란해진다.

나무 그늘은 한 채의 집이다. 작은 나무는 한두 평, 큰 나무는 서른 평도 더 된다. 이 그늘에 새도 깃들고 길냥이도 와서 몸을 누인다. 더위에 지친 나그네는 말해서 무엇하랴. 옛적에 인도의 수행자들은 나무 그늘을 수행터와 거처로 삼았다. 폭염을 피해야 했으며 번뇌와 욕망을 다스려야 했다.

부처님은 나무 아래서 태어나고, 나무 아래서 깨닫고, 나무 아래서 입멸했다. 위대한 성인의 삶은 나무와 함께했다. 나무 그늘은 대상을 가리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담장 없이 열린 집, 그게 나무 그늘의 집이다. 부처님 사상 같다. 출신 성분과 계급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니 나무 그늘 집은 위대하다.

잎이 풍성한 나무는 여성의 상징이다. 중국의 고전 <시경> 「도요편」에는 ‘곱고 고운 복숭아꽃이여, 그 잎이 무성하구나! 시집가는 아가씨여, 집안사람 모두를 화목하게 하리로다’는 구절이 있다. 여성은 복숭아나무처럼 복스러운 열매와 풍성한 나무 그늘로 두루 품어 안는다는 뜻이다.

북에서 내려와 온갖 고생 끝에 결혼한 젊은이가 있다. 대학원 학생이기도 해서 주례를 섰다. 행복하게 잘살려니 하고 있는데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암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수술도 했고 고가의 치료 주사도 십수 차례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버이처럼 아끼고 후원해주는 큰스님께서 애달파 하셨다.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상황에 노스님은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지셨다. 치료비에 보태라고 후원금을 들고 학교를 찾아오시더니 며칠 뒤엔 주변에 권선도 하셔서 거금을 또 쾌척해주셨다.

새색시 역시 북에서 내려왔다. 일가친척이 없기는 신랑과 마찬가지였다.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 오순도순 잘사는 꿈만 꾸었다. 신혼의 신랑은 돈을 벌 수 없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신부는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내래 더 급한 일이 있시요.”

부부는 결혼 전에 한 번 찾아오고 암 치료 중에 다시 찾아왔다. 후원금을 주는 자리였다. 그녀는 꿋꿋했다. 신랑을 향해 큰 그늘을 드리웠다. 서른 평도 넘어 보이는 그 그늘의 집은 교정의 꽃나무 그늘보다 아름답고 찬란했다. ‘실감난다’는 말이 있다. ‘나무 그늘이 찬란하다’거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이런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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