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고비 '나비효과'

입력 2023-10-06 17:52   수정 2023-10-07 00:36

2000년대 초중반 ‘전자제품 메카’였던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디지털카메라와 MP3 플레이어였다.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중장년층은 물론 청소년까지 용돈을 모아 구매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로 이들 제품은 매대에서 밀려났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대거 등장하면서다. 스마트폰의 ‘학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처폰과 내비게이션 기기, 전자사전이 멸종하다시피 했고 온라인 메신저와 게임기도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용산 전자상가를 비롯한 오프라인 매장의 업황마저 기울기 시작했다. 단일 제품이 이처럼 특정 영역의 제품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품목의 제품군을 동시에 밀어내는 현상은 산업계에서 이따금 나타난다.

이달 들어 뉴욕증시에서 식음료·유통 관련 종목들이 동반 급락하고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코가 52주 신저가 수준으로 밀려났고 제과·식품·주류 업종 대표주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월마트 등 유통 업체와 건강관리 업체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유통·식음료 분야 전체를 위협하는 ‘생태계 교란종’이 출현했다는 공포가 투자자들을 덮친 것이다. 위고비, 오젬픽 등 식욕억제제가 그 장본인이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월간 투여 비용이 200만원에 육박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모델 킴 카다시안 등의 다이어트 비결로 입소문이 나면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존 퍼너 월마트 미국부문 CEO는 블룸버그통신에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사람들이 식료품 쇼핑을 줄이고 있다”며 위협 요인으로 등장했음을 인정했다. 모건스탠리도 앞서 지난 8월 보고서를 통해 “복용자들의 칼로리 섭취량이 최고 30% 줄고, 외식 횟수는 42%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조사 대상의 25%는 술을, 20%는 청량음료를 끊었다고 한다.

스마트폰 출현 당시 수많은 정보기술(IT) 기기 회사가 고전했지만, 닌텐도처럼 발 빠르게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도 적지 않다. 위고비와 오젬픽은 이르면 내년 국내에 상륙한다. 국내 식음료·유통 기업들은 이 교란종의 출현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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