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재 늘어난 이유

입력 2023-10-12 18:08   수정 2023-10-13 00:17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8개월이 지났다.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하지만 법안 시행 이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은 ‘처벌을 강화해 산재를 줄이겠다’는 법 제정 취지와 거꾸로 가고 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재해자 수는 2021년 12만2713명에서 2022년 13만348명으로 늘었다. 사망자 수도 마찬가지다. 2021년 2080명에서 2022년 2223명으로 140여 명 증가했다. 재해 발생 비율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제조·건설업을 놓고 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전문가들은 처벌 자체에 과도하게 방점이 찍혀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에서 이유를 찾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악당 찾기 법’이 돼버렸다”며 “산업 안전을 위한 노력을 유도하기보다는 산재가 발생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화된 처벌을 피하려면 현장에서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모호한 것도 문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며 실제 내용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라고만 뭉뚱그렸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실제 안전에 투자하기보다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만 급급해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많은 기업이 대형로펌 출신의 노동 전문 변호사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기업의 산업안전 및 보건을 감독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퇴직 직원들의 몸값도 크게 뛰었다. 모호한 법 규정 내에서 경영자가 하루아침에 징역형을 살아야 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다.

이렇다 보니 산업 현장에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기업 경영이 위축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법적 장치인 최고안전책임자(CSO) 등을 마련할 수 없는 영세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선한 의도만 강조한 질 낮은 입법이 또 하나의 규제를 산업 현장에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처벌이 능사’라는 법의 모호한 조문들은 현장 안전과 무관한 비용만 만들어내고 있다. 아무쪼록 문제가 있는 법안 내용을 과감히 수정하는 용기를 정치권이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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