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8일 한 행사에서 최근 20년간 이렇게 중동이 조용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예멘에서 휴전이 유지되고 있고 미군에 대한 이란의 공격은 중단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라크에서 미국의 존재는 안정적이라고 자평했다. 이 발언이 나온 지 정확히 9일 후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핵심 참모가 희대의 실언 제조기가 된 셈이다.이번엔 달랐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는 상습 분쟁 지역임에도 작은 단서 하나 미리 포착하지 못했다. 중동이 더 이상 미국 외교 정책에서 핵심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회귀)’를 외치며 외교 정책 중심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겼다. 모든 관심의 초점을 중국 견제에 두기 위해서였다. 과도한 중국 중심주의로 인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안중에서 사라졌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 관리 사이에서 하마스 기습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알 수 있다”며 “상상력의 실패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상상력의 실패는 정보의 묵살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 전 가자지구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8일 1차 보고서에선 하마스가 수일 내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담았다. 이달 5일에 낸 2차 보고서엔 하마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을 넣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에 반발해 국경 지역에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정책 당국자와 주요 의원들에게도 배포됐다.
그러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보고를 받은 사람들이 ‘정보의 실패’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고서 내용이 팔레스타인 폭력 사태 가능성을 언급해온 기존 보고서와 비슷했다고 전했다. 하마스의 지상 침투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유심히 봤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런 일이 한반도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가뜩이나 한반도 안보에 대한 미국 조야의 관심이 식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주미대사관 국정감사 자리에서 “워싱턴에서 북핵 해결 논의의 필요성이 과거보다 점점 작아지는 걸 피부로 느낀다”는 조현동 주미대사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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