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본 이후, 난 눈이 먼 것 같아"…남편 향한 아내의 사랑 노래하다

입력 2023-10-19 18:14   수정 2023-10-20 02:19

그를 본 이후로
난 마치 눈이 먼 것 같아.
내가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네.
깨어있는 꿈처럼
그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으로 떠오르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첫 구절이다. 슈만이 샤미소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아내 클라라를 위해서였다. 클라라가 자기 아버지의 허락 없이도 슈만과 결혼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뒤 이틀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오직 남편만 숭배하며 오직 그를 위해 살겠다는 지고지순한 여인의 모습을 샤미소와 슈만이 노래로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들은 가부장적인 남편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자신같이 미천한 여인을 그렇게 위대하고 멋진 남자가 사랑할 리 없다며 그저 기도로 그의 행복을 바라지만,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믿을 수 없다며 기쁨의 눈물 속에서 행복한 죽음을 음미하겠다는 내용의 1번부터 3번까지의 시. 그걸 읽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어지는 4번 곡 ‘그대 내 손에 끼인 반지여’에서는 프러포즈 링을 가슴에 품고 평생 그를 위해 살며 그의 영광 안에서 빛나는 자신을 찾겠다고 경건하게 다짐하는 노래로 이전 세 곡과는 확연히 다른 차분함과 성숙함을 느끼게 한다. 결혼식 장면을 그리고 있는 5번 곡에서는 분주한 결혼식장의 모습과 들뜬 화자의 심리가 빠른 템포와 함께 잘 그려져 있고, 특히 버진 로드를 걸으며 친구들의 축하 속에 눈물을 감추는 모습과 후주로 이어지는 결혼 행진곡은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는 기쁨과 또 다른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으로 슬픈 마음이 공존하는 순간을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복한 결혼 생활, 사랑하는 이와 미래를 꿈꾸며 그를 닮은 아이를 안고 기뻐하며 이런 기쁨은 오직 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 남자들은 안타깝다고 말한다.

마지막 8번 곡 ‘이제야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시네요’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피아노의 첫 음이 죽음을 알리고 잠자는 듯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편을 마주하며 자신의 세상이 사라졌음을 레치타티보와 같이 읊조리듯 노래한다. 그리고 다시 1번 곡 ‘그대를 본 이후로 난 눈이 먼 것 같아요’의 선율이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후주로 연주되며 여인의 모노드라마가 끝을 맺는다.

샤미소의 시에는 8번에 이어 할머니가 된 여인이 손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가 있다고 하나 슈만은 그 시에는 작곡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의 권위가 높아지고 오늘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비혼주의, 딩크족, 저출산 등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나 슈만의 음악적 드라마가 있어 이해되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연가곡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순종은 시대를 막론하고 기꺼이 그리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황수미 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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