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독도 바다는 '33인의 청년'이 지켰다

입력 2023-10-24 03:00  



"독도 근해에서 오징어 조업을 하던 선친께서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독도를 손짓하시며 '우리 청년들이 열악한 배를 타고 직접 지킨 곳'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죠."

조석종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장은 지난 20일 경북 울릉군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서 이같이 말했다. 선친인 고(故) 조상달 씨는 1953년 결성된 독도의용수비대에서 전투 대원으로 활동했다. 25일 '독도의 날'을 앞두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마련한 이날 기자간담회는 70년 전 조직돼 3년 8개월간 독도와 인근 영해를 지킨 독도의용수비대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를 일본의 침탈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홍순칠 대장 등 33명으로 구성됐는데, 대부분 가벼운 상처를 입고 의병 제대한 청년들이었다. 기념관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가장 잘 보이는 동쪽 해안 지점에 2017년 들어섰다.



울릉도 청년들은 왜 독도로 나섰을까. 1950년대 초 일본 어선들은 독도에 무단으로 침입해 자기네 영토라는 말뚝을 꽂았다. 인근 해역에는 일본 순시선이 돌아다니며 우리 어민의 조업을 방해했다. 조 관장은 "우리 땅인데 왜 우리 주민이 어업을 못 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으로 의용수비대가 결성됐다"고 말했다.

의용수비대는 총 6차례 일본 무장 순시선을 물리쳤다. '독도 대첩'으로 불리는 1954년의 교전이 대표적이다. 독도 인근을 침범한 일본 무장 순시선 오키호·헤꾸라호에 약 1시간 공세를 퍼부었고, 헤꾸라호에 박격포를 명중시켜 격퇴했다. 매년 11월 21이면 대전 국립현충원 독도의용수비대 묘역에서 유가족이 모여 이날을 기념한다고 한다.

이들은 독도 동도 암벽의 '한국령(韓國領)' 조각 등 우리 영토라는 표지를 설치했다. 서도에서 식수원인 물골을 발견하고, 동도의 계단과 등대, 막사 건립 등에 참여하며 정부의 독도 실효적 지배 활동을 지원했다. 1956년 말 경찰에 수비 업무를 인계하며 오늘날 독도경비대 설치의 기반을 닦았다.



기념관 입구에는 의용수비대가 처음 독도에 상륙했을 당시 섬의 모습이 너비 15m의 대형 모형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 등대나 접안시설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동도에 놓인 막사 한 동이 전부다. "풍랑이 거칠면 길게는 보름까지도 근무 교대를 못 했습니다. 선친은 식수를 구하기 위해 드럼통을 메고 동도에서 서도까지 약 150m를 목숨 걸고 헤엄친 일화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셨죠."

올해로 6년째를 맞은 기념관은 지금껏 약 7만명이 찾았다. 조 관장은 "독도의용수비대가 아직 국민들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학교 등 교육기관과 연계해 학생들한테 독도를 지킨 선조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울릉=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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