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 칼럼] 의사들 동네병원行, 손놓고 봐야 하나

입력 2023-10-24 18:00   수정 2023-10-25 09:06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선 올 들어 교수 11명이 그만뒀다. 서울의 ‘빅5’ 병원 중 한 곳에선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5명이 집단 사직했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소화기내과 교수 2명이 사표를 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문제나 자녀 교육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 진료와 수술, 의대 강의와 수련에다 연구 성과까지 꼬박꼬박 내야 하니 쉴 틈이 없다. 갈수록 전공의가 줄어 교수가 당직까지 서야 한다. 내과·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생명을 다루는 필수과목의 ‘바이털 의사’가 특히 힘들지만 문제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목 불문, 지역 불문, 노소 불문이다.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다들 대학병원, 종합병원을 떠난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의사라고 하면 의대 졸업 후 5년가량 수련의,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문의를 뜻한다. 10년 이상의 어렵고 힘든 공부 과정을 거쳤기에 생명을 살리는 보람과 자부심에다 사회적 지위, 상대적으로 넉넉한 경제적 보상은 당연시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생명을 살리는 보람보다 의료소송에 휘말릴 리스크가 더 커졌고, 업무 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개원의들과의 수입 격차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에 따르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연봉은 1억6000만~1억8000만원, 동네 병·의원 의사 연봉은 평균 3억2000만원 정도다. 존경도 명예도 없으니 돈이라도 벌자며 전문의들이 대학병원을 떠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전문의 9만3457명 중 동네병원 소속은 4만4754명(47.9%)이다. 그런데 2021년 기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약 8조6000억원,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비급여 진료비는 4조2000억원이다. 의사 수는 비슷한데 동네병원 비급여 진료비가 두 배 이상이다.

국내 의료서비스 시장이 급여 중심 시장(종합병원급 이상)과 비급여 중심 시장(동네병원)으로 양분된다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건 이런 까닭이다. 특히 피부미용과 성형 등 건강보험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 분야의 의료 수요가 늘면서 이들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비급여 중심 시장 의사들의 수입과 일의 강도가 전체 의사들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과 비교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필수과목 의사들에겐 비급여 시장이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자 탈출구다.

현행 의료법상 의대 졸업 후 의사 자격증만 따면 동네의원을 개업할 수 있다. 진료과목은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표시하면 된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8~2022년 일반의가 새로 개원한 의원 979곳 중 843곳(86%)이 피부과를 진료 과목으로 신고했다. 성형외과를 진료 과목으로 표시한 의원도 42%에 달했다. 반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각각 6%와 23%에 그쳤다. 의대 졸업 후 피부과, 성형외과 의원에서 ‘미용 의료 시술’에 바로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문의를 따고도 자신의 전문과목을 포기한 채 돈이 되는 미용·성형 일반의로 개원하거나 진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니 더욱 놀랍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의료 붕괴를 수습하려면 진료수가 현실화, 임금 인상 등의 조치와 함께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비급여 중심 시장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전체 의사의 절반가량이 종사하는 동네병원 모두를 의료 영리화의 주범처럼 몰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비중이 큰 만큼 동네병원이 민간 영역이면서 공적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의사들이 미용 의료로 무제한 빠져나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의료정책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의대 졸업생들이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으로 몰릴수록 필수과목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의대 졸업 후 2년의 인턴 수련(임상연수)을 거쳐야 독립적으로 진료할 수 있다. 미국, 영국 등도 거의 비슷하다. 지역별로 진료과목당 동네병원 수를 제한하는 ‘개원의 총량제’로 과목 간 균형을 유지하는 독일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비급여 시장의 문단속을 하지 않으면 의대 정원 확대의 효과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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