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동반성장하려다 동반몰락…이젠 낡은 틀 깨자

입력 2023-10-27 17:40   수정 2023-10-28 00:13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해외에서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실제 목격한 한국 식품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달 초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식품박람회 ‘아누가’에서 한국 식품기업들이 차린 부스는 문전성시였다. 냉동김밥을 출품한 기업은 박람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해외 바이어들의 상담 예약이 꽉 찼고, 다른 한 기업은 박람회 현장에서 바로 수주 계약을 따내 참가 비용을 모두 뽑고도 남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독일 주요 공중파 방송인 WDR의 저녁 뉴스에는 한국 전통 과자 약과가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누가를 소개하던 기자는 국내 기업이 출품한 약과를 먹더니 “베리굿, 베리굿”을 외쳤다. 전 세계에서 올해 아누가에 참석한 기업은 8000여 곳. 이 중 세 곳이 뉴스에 소개됐는데 두 곳은 독일 기업이었고 해외 기업으론 한국이 유일했다.

어쩌면 5년, 10년 후에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과 같은 수출역군 대열에 식품이 합류하지 않을까 상상할 정도로 한국 식품산업의 가능성을 엿본 현장이었다.

가장 의외의 반응이 나온 것은 떡이다. 떡볶이, 증편 등 한국 떡을 시식하려는 해외 바이어가 줄을 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떡은 외국인들에게 혁신적인 식품으로 받아들여졌다. 글루텐 불내증이 있어도 섭취할 수 있는 ‘글루텐 프리’인 데다 우유·버터·계란이 첨가되지 않은 비건(식물성) 디저트라니, 떡이야말로 최신 글로벌 식품 트렌드에 찰떡처럼 부합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떡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국 떡집 수는 2018년 1만7200개, 2021년 1만6500개로 매년 200~300개씩 줄어들고 있다. 떡 프랜차이즈 1위인 SPC삼립의 ‘빚은’ 매장은 한때 200호점 가까이 늘었다가 지금은 50개도 되지 않는다. 동네 방앗간은 자취를 감췄고 떡의 원재료인 쌀 시장도 타격을 받았다.

떡 산업이 위축된 데는 식문화 변화에 따라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 있겠지만, 정부의 규제도 한몫했다. 전통 떡 사업은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대기업은 떡 사업에 신규 진출을 자제하고 기존 사업자라면 생산을 확대하면 안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할 목적으로 이 제도가 도입된 후 12년 동안 113개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됐다. 이 중 떡을 비롯해 김치, 어묵, 조미김 등 38개가 식품이다. 비율로 따지면 33.6%, 셋 중 하나가 식품이란 얘기다.

지금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대부분이 구속력 없는 자율협약으로 전환됐지만,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또 다른 틀로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차단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식품기업들은 ‘낙인효과’에 갇혀 대규모 투자를 망설인다. 매장 수 확장은 물론이고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 공장 증설 등 기업 고유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관할 기관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주장처럼 성숙기나 쇠퇴기 업종을 생업으로 삼는 중소기업에 대한 최후의 사회적 보호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울타리 안에 보호하는 정책이 10여 년 동안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는지, 동반성장이란 취지답게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냈는지 심도 있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길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가 됐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해당 업종에서 중소기업 퇴출은 막았을지 몰라도 대기업이 포기한 시장을 그들이 가져가 키우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생산과 고용은 감소했지만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중소기업 종사자 수 비중과 1인당 인건비는 오히려 줄었다. 글로벌 농식품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 7조9800억달러(약 1경805조원)에 달한다. 반도체(810조원), 바이오의약품(585조원)보다 훨씬 크다. 1경원 규모의 세계 무대가 열려 있는데 내수 시장을 두고 울타리를 쳐버리는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수출하기 적합한 식품을 연구개발하고 국내에서 테스트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이 길을 터주면 중소기업도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한쪽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한쪽을 막는 것은 동반성장이 아니다. 모두 함께 커야 동반성장이다.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이에 중국산이 판치는 김치 시장처럼 한국의 전통 떡도 다른 국가에서 선점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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