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출신 예술가의 '한지 미완성작'…30년 만에 재탄생

입력 2023-10-30 18:42   수정 2023-10-31 01:13


1945년 한반도에 거주하는 서양인은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광복 후 미 군정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미군이 한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1928~1994)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46년 6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던 저드는 1991년 4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때 그를 사로잡은 게 ‘한지’였다. 그는 자신의 목판화 신작에 한지를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작품에 쓸 색깔부터 목판 종류까지 모두 정했다. 하지만 1994년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저드의 한지 목판화는 미완성 작품이 돼 버렸다.

저드가 마무리하지 못한 작품이 30년 만에 한국에서 공개됐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2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저드의 개인전 공간에 가로 80㎝, 세로 60㎝인 목판화 20점이 걸려 있다. 그가 생전 구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도널드저드재단이 2020년 제작한 작품들이다.

한지 위에 그어진 반듯한 격자, 그 공간을 채우는 감각적인 색깔. 30년 전에 구상한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작품은 현대적이다. 단조로움 속에 세련됨이 돋보인다. 선 면 색깔 등 단순한 요소로 공간을 변주하던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드의 시그니처인 ‘3차원 오브제’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선 보기 드문 회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드는 “네모난 캔버스에 갇힌 회화는 완전한 사물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3차원 조각을 주로 만들었다. 전시장 안쪽에 있는 그의 초기작 ‘무제’(1950)는 그래서 회화인데도 평면적이지 않다. 물감을 여러 번 덧발라 구현한 입체성이 도드라진다.

그 밑 1층 전시장은 한국과 인연을 맺은 또 다른 예술가 요셉 보이스의 차지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과 예술 동지였던 보이스는 퍼포먼스, 조각, 설치예술을 넘나든 독일의 개념미술가다. 이 전시에선 그의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연필로 그린 동물과 인체 누드, 납작하게 압축한 나뭇잎과 꽃잎 등을 통해 ‘드로잉은 습작이나 예비 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저드 전시는 오는 11월 4일까지, 보이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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