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석 칼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국민만이 아니다

입력 2023-10-31 17:49   수정 2023-11-01 00:22

민주주의는 상상의 산물이다. 일종의 발명품이다. 지금은 공기처럼 당연해 보이는 국가와 자본주의 등의 제도 역시 마찬가지.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미리 정한 규칙에 순응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고 마는 ‘카드로 쌓은 집’이다.

민주주의는 늘 도전받았다. 응전에 실패해 곧잘 무너지기도 했다. 내전이나 테러 같은 외부적 폭력이 주요 ‘항원’이었다. 최근 들어 유독 두드러지는 도전도 있다. 포퓰리스트의 등장이다. 이들은 표면상으론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움직인다.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같은 ‘선을 넘는’ 극단적 순간이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적 비상벨이 먹통이 되는 이유다.

포퓰리스트의 먹이는 사회적 불만이다. 경제가 침체하는 가운데 과격한 이념 투쟁으로 사회가 양극화하면 선동가들이 기지개를 켠다. 독일이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는 분위기다. 그 중심엔 최근 들어 세를 불리는 독일대안당(AfD)이 있다. 반이민, 반이슬람을 내세우는 극우 정당이다. 등장한 지 10년 동안 큰 힘을 쓰지 못하다 올해 초부터 급부상했다.

독일 공영방송(ZDF)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AfD의 지지율은 21%로 집권 사회민주당의 15%, 녹색당의 14%를 훨씬 앞섰다. 이탈리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무솔리니 집권 이후 100년 만에 정국 주도권이 극우 정당 수중에 들어갔다.

과격 선동집단의 득세는 유럽만의 일이 아니다. 아직도 대선 불복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라 미국도 위태위태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해임됐고, 그 자리엔 친트럼프 인사로 분류되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원이 선출됐다.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공화당 초강경파 의원 모임인 프리덤코커스와 극성 지지층인 MAGA의 목소리를 넘지는 못했다. ‘개딸’과 ‘처럼회’ 등에 휘둘리는 한국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극단적인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출몰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막느냐다. 궁극적인 저지선은 물론 ‘깨어있는 국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돼 일반적으로 ‘민도’가 높다고 하는 선진국들도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대책은? 정당의 정화 기능이 동반돼야 한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가 나서서 포퓰리스트가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해야 한다. 심지어는 상대 정당과 손을 잡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치 지도세력의 결단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2017년 프랑스 보수 진영 후보 프랑수아 피용은 극우파 후보 마린 르펜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중도좌파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지지하도록 당원들을 설득했다. 1979년 영국 총선에서는 노동당과 노동조합이 손을 잡고 보수당 마거릿 대처 후보를 지지한 일도 있다. 정당이 민주주의의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사례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는 이렇게 조언했다.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았다. 대한민국 정당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적합한지 따져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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