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몰래…"증거 잡겠다" 녹음기 켜놓고 휴가 간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3-11-05 13:31   수정 2023-11-05 14:19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따돌림 등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겠다며 녹음기를 켰다가 징계, 심하게는 징역형의 처벌을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녹음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면 되레 역공을 당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형사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들의 주의해야 할 최신 법원 판결을 몇가지 소개한다.
◆작업실에 녹음기 켜놓고 휴가 가…법원 "정직 처분 정당"
사립대 병원에서 2001년부터 임상병리사로 일하던 K씨는 2021년 7월 건강진단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간호사들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신고했다. 상담 과정에서 조직문화팀의 한 차장은 정부 매뉴얼에 따라 "녹음이 근로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취지로 안내했다.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K씨는 신고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했다. 건강진단실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에 마이크를 연결해 매회 2~3시간씩 여섯번에 걸쳐 근무자들의 대화를 녹음한 것. 녹음기를 켜두고 휴가를 간 K씨는 컴퓨터에 마이크가 설치된 것을 발견한 동료들에게 적발당했다.

결국 이 병원은 규정에 따라 정직 3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B씨는 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서울지방노동위와 중노위 모두 기각하자 결국 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B씨는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수집하려는 목적이었고, 조직문화팀 차장의 안내에 따라 녹음한 것"이라며 "내가 자리를 비울 땐 녹음프로그램을 종료시켜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분량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법원은 "업무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대화를 녹음한 행위는 직장 동료 간 불신을 초래하고 불안을 유발하며, 비공개된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이 회사 규정상 '직장규율 및 질서문란 행위'에 해당한다"며 징계 사유로 인정했다(2022구합103163).

자신이 자리에 있을 때만 녹음 프로그램을 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 명이 근무하는 업무공간 특성상 타인 간 대화가 녹음될 수밖에 없다"며 "녹음이 된 장소가 여러 명이 함께 근무하는 업무공간으로서 공개된 공간이어도 내밀한 영역이나 사생활과 관계된 것으로서 제3자에게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 대화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이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진단실은 수검자와 환자의 건강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병원"이라며 "동료 근로자들의 업무의 원활한 수행에 지장이 생길 경우 수검자와 환자의 건강상 위해라는 엄중한 결과가 초래될 위험도 있다"고 꼬집었다.

◆동료 대화 녹음해 사업주에 제보...법원 "위법"
통신비밀보호법은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녹음 사실이 적발 된 경우 높은 확률로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녹음되는 줄 몰랐다"고 실수를 주장하거나 "녹음을 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형법상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 '정당행위'를 주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요양보호사 C씨는 한 동료 요양보호사가 돌봄 대상인 노인을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동료와 노인 사이의 대화를 녹음했다. 동료가 침상에서 내려오는 노인을 보고 "말 안 들으면 갖다 버린다" 등의 말을 한 게 녹음됐고 C씨는 해당 사실을 요양원장에게 공개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 당한 C씨는 재판과정에서 "부적절한 언사와 노인에 대한 정서적 학대를 고발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했다"고 주장했다. '정당행위'라고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월 이뤄진 선고에서 "피해 노인으로부터 직접 피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제보하는 것도 가능했다"며 "녹음 및 공개행위가 적절한 수단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녹음을 하지 않을 경우 해당 노인의 안전과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는 긴급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2022고합930). 다만 다른 동료 요양보호사들이 선처를 탄원한 점과 녹음 동기들을 고려해 형은 선고유예했다.

전주지법 남원지원도 지난 5월 한 남원시의 한 회사에서 일하던 시각장애 1급 장애인 G씨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사건에서 녹음기를 켜놓고 자리를 뜬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2022고합24). G씨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를 몰래 녹음하기로 마음먹고 볼펜형 녹음기를 자신의 좌석 옆에 높인 쇼핑백에 꽂아둔 것. G씨의 행위는 보통보다 두꺼운 볼펜이 쇼핑백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 동료들에 의해 적발됐다.

이후 동료들은 G씨의 해명을 들어보려 했지만, 역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절도' 운운하는 G씨를 고소했다. 법원은 G씨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봤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호소해 온 사실, G씨가 녹음 대상이 된 동료에 대한 업무상 불만을 일기장 등에 작성한 사실 등을 근거로 징역 1년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최근 대법원도 상사에게 앙심을 품고 상급자와 방문자 사이 대화를 녹음한 공무원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2023도10284).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며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녹음기를 켜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자리를 비우거나 녹취 대상이 광범위할 경우 제3자 간 대화를 녹음하는 셈이 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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