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동업조합과 인공지능

입력 2023-11-05 17:30   수정 2023-11-06 00:24

지난 한 세대 동안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AI)에 바탕을 둔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들이 발전했다. 외국에선 그런 기술들이 비교적 빠르게 채택돼 생산성을 높인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반대해서 그런 기술이 거의 도입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법률과 의료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 사정에서 나오는 사회적 손실은 엄청나다. 법률가들과 의사들이 보는 이익보다 사회가 입는 손실이 훨씬 크다. 생산성이 떨어지니, 비용이 많이 들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느리다.

법률가들과 의사들이 그렇게 초과 이윤을 얻는 방법은 동업조합(guild)의 결성이다. 우리의 경우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그런 동업조합들이다. 이들의 권력은 하도 커서, 어느 정권도 그들의 특권을 허물지 못한다. 지금 대통령과 여야 당수들까지 법률가다. 의사가 부족해서 야단인데,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총파업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들 힘센 동업조합의 이기적 행태로부터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려면, 시민들이 동업조합의 내력과 성격에 대해 알아야 한다. 동종의 업자들이 배타적 조직을 만들어서 초과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는 어디서나 나온다. 4000여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미 동업조합들이 성했다. 로마제국에서 보편화된 동업조합은 중세 유럽에서 극성기를 맞았다.

상업이 발전하지 않았던 터라, 우리나라에선 동업조합이 발전하지 않았다. 조선의 육의전(六矣廛)과 시전(市廛)은 정부로부터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얻었다는 점에서 동업조합의 특질을 지녔었다. 이어 보부상이 동업조합의 형태를 갖췄다.

동업조합의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조합원이 되려면, 먼저 도제(apprentice)가 돼 장인(master) 밑에서 오랜 기간 훈련받아야 한다. 훈련이 끝나면, 직인(journeyman)이 돼 다른 장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여러 해 동안 그렇게 기술을 연마한 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장인 작품(masterpiece)’을 제작하면, 비로소 장인이 된다(지금의 의사 수업과 흡사하다).

동업조합의 힘을 약화시킨 것은 산업혁명이다. 공장 생산과 지속적 기술 혁신은 수공업의 바탕을 없앴다. 그러나 공장 생산이 어려운 지식 서비스 분야들의 동업조합은 살아남았다. 법률, 의료, 공학 및 교육은 대표적 분야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양의 대학들이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동업조합으로 출발했고 현대 대학들이 아직도 동업조합의 특질을 짙게 지녔다는 점이다. 보다 중요하게, 다른 동업조합들의 특권은 모두 대학이 누리는 특권에 바탕을 뒀다. 변호사, 의사, 약사, 기술사와 같은 허가된 특권은 거의 다 대학 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만 취득 자격을 준다.

지식 서비스 분야의 동업조합들이 구축한 아성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인공지능이다. 사람의 지능을 대신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니, 당연한 일이다. 의료 분야에선 1980년대의 ‘CADUCEUS’라는 프로그램은 1000가지 내과 질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의료 전문가 체계들이 훨씬 발전해서 진단과 처방에서 의사들을 돕고, 이 덕분에 의사들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자연히 동업조합이 세운 진입 장벽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교육 분야도 사정이 같아서, 인터넷 강좌인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근본적 변화를 불렀다. 유다시티(Udacity)에선 과목마다 학위를 주는 미세학위(nanodegree)를 도입했다. 이제 챗GPT 같은 생성 인공지능이 교육 변혁에 가세했으니, 고등교육은 시장경제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물론 동업조합들은 저항할 것이다. 모든 동업조합은 저마다 자신의 지식 서비스 품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면허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은 그럴듯해서 다수 시민이 솔깃하게 마련이지만, 동업조합의 궁극적 목적은 조합원들의 이익 극대화다. 높은 품질을 유지해서 공공의 이익을 확보하는 길은, 제조업이든 지식 서비스든 활발한 경쟁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늘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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