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의대 쏠림에 대한 처방전

입력 2023-11-09 18:00   수정 2023-11-10 00:25

오는 16일 치러지는 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고등학교 졸업생 지원자 수가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따라 반수에 뛰어든 수험생이 늘어난 영향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의대 쏠림도 한몫했을 것이다. 반수를 포함한 재수는 상위권 이과 학생들에게 의대 진학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은 누구나 의대 진학을 원하고 의대가 영재들을 싹쓸이하는, 의대 쏠림 현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영재들의 맹목적인 의대 진학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일지 몰라도 국가 차원에서 인적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인적자본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 의대 쏠림은 단순히 사회 현상이 아니라 심각한 경제 문제다.

의대 쏠림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 다른 전공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에 있을 것이다. 얼마나 높을까? 이를 다른 분야를 전공한 뒤 대기업에 취업하는 경우와 비교해보자.

한국에서 의대 진학은 거의 예외 없이 의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의사국가시험 합격률 95.7%’라는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한국 의사의 연평균 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의사들의 연평균 소득은 2억3070만원이었다. 이는 같은 해 국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연평균 임금 7008만원의 약 3.3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의대생은 의대 졸업 후 의사라는 직업과 수입을 보장받고 해고의 위험 없이 평생 안정적이다. 반면 다른 분야 전공 학생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어느 것 하나 보장돼 있지 않다. 이들은 상당한 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그간 경제학 연구에 의하면 노동시장에서의 불확실성 혹은 위험 제거의 경제적 가치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됐다. 일례로 라즈 체티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위험기피도 추정치를 대입해 보면 이 가치는 20% 이상이 된다. 20%의 가치만 인정하더라도 위험이 거의 없는 의사 연봉 2억3070만원의 가치는 일반 직장인 연봉 기준 2억7684만원에 해당한다.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는 어림잡아 다른 분야의 4배나 된다. 대학입시 한 번에 이와 같은 경제적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데 어느 청소년과 그의 부모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의대 쏠림이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가 다른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면 이를 낮추는 것이 의대 쏠림 문제의 대증적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필수 진료과목과 지역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와 의사 정원을 늘리려 하고 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의사 공급이 늘면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줄어 의사의 평균 소득이 감소하고 그 결과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의대 정원 증원은 최상위권뿐 아니라 차상위권 이과 학생들까지 의대로 진학하는 결과를 초래해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의대 쏠림이 심화할 수 있다.

의대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의료 수요를 줄일 필요가 있다. 의료 수요가 줄면 역시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감소해 의사의 평균 소득이 줄고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한다.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체계는 불필요한 의료 수요와 과잉 진료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감기로 병원을 찾고 도수치료를 마사지 받듯 한다. 불필요한 경증 의료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의료보험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의대 쏠림을 완화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더불어 이제 의사도 다른 분야처럼 의사가 되는 과정에 불확실성이 개입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의사국가시험 합격률을 현재보다 낮추고 의사 면허의 종신 보장을 개선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사가 되고 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면 이는 의대 진학의 경제적 가치를 상당히 하락시켜 대입 수험생들이 의대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할 것이다. 더불어 공부만 잘하는 학생보다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의대를 선택하는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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