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를 출입하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안경원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웬만한 유명 상가 건물에는 안경원이 한 곳은 꼭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안경사는 "편의점 개수와 맞먹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여의도에 유독 안경원이 많은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올해로 27년째 펀드 매니저 생활을 하고 있는 자산운용사 K사 김 부문장은 업무에 모니터 8대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를 여러 대 쓰면 정면뿐 아니라 다각도의 측면도 응시해야 하기 때문에 한 대를 쓰는 것보다 눈의 피로감을 가중합니다. 김 부문장은 "원래 시력이 2.0으로 상당히 좋았는데 이 직업을 가진 이후로 점점 나빠지더니 최근 검사에선 0.8이 나오더라"며 "눈에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루테인과 지아잔틴 등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건강기능식품을 종류별로 구비해 아침 저녁으로 챙겨먹고 있다. 그래야 죄책감이 덜 드는 느낌"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문장은 모니터용 안경 한 개, 점심미팅용 안경 한 개, 야간 운전용 안경 한 개 등 총 세 개의 안경을 쓴다고 합니다. 근거리와 장거리, 야간 등 환경에 따라서 안경의 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그는 "미팅을 나설 땐 꼭 안경을 바꿔껴야 한다. 어느샌가 안경 하나 갖고는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금융투자 유관기관 K사의 박 대리도 렌즈를 포기하고 안경을 택했습니다. 그는 "종일 모니터를 보는 데다 사무실이 굉장히 건조하기 때문에 렌즈를 낀 날에는 눈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무조건 안경을 쓰고 출퇴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패션'의 요소가 관측된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여의도역 인근 B 안경원 원장은 "단골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점심시간에 안경원에 들러 테를 바꿔가곤 한다. 브로커 등 영업직의 경우에는 지적인 이미지나 신뢰감 등을 높이기 위해 시력이 좋은데도 청광 렌즈를 입힌 안경들을 맞춰간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연예인 중에선 아이돌 장원영(소속그룹 아이브)과 배우 변요한, 공직자 중에선 전 대통령들이 쓴 안경이 인기가 많다"고 부연했습니다.
활동 반경 내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게 여의도 직장인들만의 특징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는데요. 여의도동 E 안경원장은 "여의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보면서 촌각을 다투다보니 멀리 있는 곳을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가격이 적당한 가게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직장과 가까운 안경원을 찾는다. 이게 안경원이 곳곳마다 차려진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금융권 임직원과 의사 등 전문직이 주로 찾다보니 가격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것 같다. 고가 안경이라고 하면 60만~70만원 선인데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대부분 부담 없이 사 간다"며 "회식이나 저녁미팅이 잦다보니 술을 마시고 나서 잃어버려서 아침 일찍 문 열자마자 안경원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위치에 따라 안경원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가 나뉘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2030 젊은 층은 더 현대와 파크원, IFC 몰에 입점한 안경원을 찾고 4050 임직원들은 그 근처 상가나 기관에 입점한 곳을 찾는 경향이 있단 겁니다.
더 현대 몰에 입점한 한 안경원 관계자는 "안경도 패션 아이템의 일부가 되다보니 예전처럼 꼭 살 경우에만 들르지 않는다"며 "젊은 층이 쇼핑몰에 들른 김에 구경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방문하는 게 이 곳만의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혹사당하는 눈은 현대인의 당연한 질병이라고 합니다. 여의도에서는 이 정도면 '현대병' 보다는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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