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펜타닐'이 뭐길래

입력 2023-11-15 17:48   수정 2023-11-16 00:25

독일의 전쟁 평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명저 <전쟁론>은 적의 힘을 약화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적의 전투력을 훼손하거나, 적의 후방 인프라를 파괴하는 식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대신 ‘정신력을 고갈시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점에서 전쟁을 본다면 미국에 역대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준 나라는 중국이다. ‘사상 최악의 마약’으로 평가받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통해서다. 펜타닐은 천연재료에서 추출한 헤로인 등과 달리 각종 화학 재료를 합성해 만든다. 그만큼 만들기가 쉽다. 대부분 원료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 뒤 제3국에서 합성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간다.

2000년대 들어 미국 내 펜타닐 중독자는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망자 수만 봐도 그렇다. 미국인이 가장 많이 사망한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다. 독일 이탈리아 등을 상대로 한 유럽 전선에서 28만 명, 일본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서 20만 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합성 마약으로 사망한 사람은 30만 명을 훌쩍 웃돈다. 미국의 청장년층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일 정도다. 중국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총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역대 전쟁 당사국들보다 미국에 심각한 타격을 준 셈이다. 여기에 각종 사회문제까지 더해진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대낮에도 펜타닐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이른바 ‘마약 좀비’가 넘쳐난다. 도시의 핵심 기반이 붕괴하고 범죄율은 치솟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중국 내 펜타닐 원료 제조를 단속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단속에 응하는 대신 중국 공안부 법의학연구소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연구소는 중국 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을 탄압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국이 펜타닐을 막기 위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국가 존망이 달려 있다는 얘기다.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마약 좀비의 위협이 어느새 지척에 와 있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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