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얼마 전 영화관에서 봤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라고 하지만 내용이 쉬이 와닿진 않았다. 뛰어난 영상미와 군데군데 보이는 위트는 즐거웠으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감독이 모티브를 얻었다는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어본 이유다. 두 작품은 일본어로는 같은 제목이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제목엔 조사 ‘은’(일본어 は)이 빠져 있다.‘선(善)과 악(惡)’. 두 단어는 소설과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요시노 작가는 책을 통해 인본주의 정신을 심어주고, 꿈을 갖고 정의롭게 사는 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된 때는 1937년이다. 중·일 전쟁 발발에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숭배되고, 세계적으로 적잖은 젊은이가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던 시기다.
미야자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주인공 마히토 역시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 속에 세상을 배워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이다. 마히토는 군수업체 사장의 아들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죽음, 친구와의 불화 등으로 힘들어한다. 급우들과 주먹다짐 후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돌로 자신의 머리를 때려 피를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내면에 있는 악의의 표현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이따금 내면의 선과 악을 만난다. 모순된 행동도 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말했듯 티끌만치도 안 되는 존재이지만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이겨내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슬픈 일도 겪는다. 그럼에도 실수를 극복하고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묵묵히 살아가라고 소설과 영화는 말하는 듯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이 아니라 살아가라는 당위론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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