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널 갖겠어"…사랑의 死神이 된 여인

입력 2023-11-23 18:13   수정 2023-11-24 02:22


“당신의 머리는 내 거야. 그대의 목소리는 향로 같았고, 그대를 볼 때면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 그런데 왜 나를 보지 않았던 거야? 나를 봤다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을 텐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목청껏 소리치던 여자가 잘린 남자의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쥔 채 키스를 퍼붓는다. 그를 흠모해온 계부이자 국왕은 “저 여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떼로 몰려들어 방패로 그녀를 찍어 누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격렬한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고 사람들은 침묵에 쌓인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같은 공포 스릴러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로 불리는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결말이다. 이 작품이 쓰인 지는 100년도 넘었다.

살로메엔 인간의 금기가 여럿 담겨 있다. 우선 계부 앞에서 주인공인 살로메가 몸에 걸친 베일을 차례로 벗어던지며 야릇한 몸짓으로 춤추는 장면. 이 연출은 1905년 초연 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흥행엔 성공했지만, 음악계에선 ‘음란 오페라’라고 낙인찍혔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살로메’ 공연을 27년간 금지했다.
“제게 요한의 머리를 주세요” 그녀의 위험한 구애
스토리는 더 그렇다. 헤롯왕의 의붓딸인 살로메가 춤을 춘 대가로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요구했다는 신약성서 속 한 구절이 소재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적 경향이 짙게 밴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는데, 살로메를 갈구하는 두 남자의 뜨거운 시선으로 첫 장을 연다. 궁전에서 열린 화려한 연회장. 헤롯왕이 연신 자신의 의붓딸인 살로메에게 추파를 던지고, 궁전 밖에선 근위대장인 나라보트가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끊임없이 털어놓는다.

바로 그때 정원에 있는 지하 감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인은 회개하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한. 남편을 살해하고 그의 이복형제인 헤롯왕과 재혼한 왕비 헤로디아스를 겨냥해 외친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에 끌린 살로메는 나라보트를 시켜 요한을 감옥 위로 끌어 올린다. 달빛 속에 드러난 요한에게 한눈에 반한 살로메는 열렬히 구애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 않고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이후 헤롯왕이 살로메에게 “원하는 모든 것,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자신을 위한 춤을 춰달라고 요구하면 살로메는 기다렸다는 듯 관능적 몸짓을 선보인다. 이때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이 오페라의 시그니처 악곡인 ‘일곱 베일의 춤’이다.

흡족해하는 헤롯왕에게 살로메가 말한 소원은 “은쟁반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것. 헤롯왕은 신성한 요한을 죽이면 화를 입을 것을 걱정하지만 살로메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요한을 사형에 처한다. 결국 한 병사가 요한의 머리를 잘라 가져오고, 살로메는 사랑을 부르짖다 헤롯왕의 명령에 죽임을 당한다.
강렬한 사운드에 심장이 쿵
‘일곱 베일의 춤’은 그 파격적 스토리만큼이나 음악도 강렬하다. 시작부터 장대한 팀파니 울림과 날카로운 현, 직선으로 뻗어가는 세찬 금관 선율이 뒤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운 인상을 남긴다.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쯤 모든 악기가 음량을 대폭 줄이며 살로메의 몸짓을 주목하게 한다. 묘한 음색의 오보에가 짧은 꾸밈음을 긴 음표 앞에 붙여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도 이끌어낸다. 마치 아랍계 민속 음악과 춤을 엿보는 듯하다.

약음기를 낀 현이 긴 선율을 뽑아내면서 마치 하늘에 거대한 구름이 드리운 것 같은 풍성한 양감을 불러내기도, 이따금 팀파니 주자가 악기를 강하게 내려치면서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는 극도의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탬버린, 첼레스타, 마림바, 하프 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과 슈트라우스 특유의 반음계 선율은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3박 리듬으로 전원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다가도 캐스터네츠의 신호를 시작으로 전투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극적인 전개는 박진감의 연속이다.

후반부에서 트럼펫이 숨을 강하게 몰아쉬며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구간은 마치 앞으로의 비극을 경고하는 사이렌 소리처럼 격렬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를 시작으로 내달리듯 이어지는 현악기의 격앙된 선율,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음을 빠르게 떨어뜨렸다 끌어올리며 강하게 내려치는 마지막 세 개의 화음까지 집중해 들어보시길. 음악만으로도 슈트라우스가 그려낸 욕망과 파멸의 순간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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