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중대재해법 유예? 폐기가 답!

입력 2023-11-26 17:37   수정 2023-11-27 00:18

지난해 북미 최고 권위의 밴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19). 그의 꿈은 ‘신에게 빚진 재능을 아무 조건 없이 음악에 소외된 이들에게 음악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콩쿠르 우승은 꿈을 향해 가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유감스럽지만 꿈과 수단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나 사회는 방향성을 잃기 쉽다. 이를테면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소득을 위해 의대 진학 자체가 목표가 된 요즘 풍토가 그렇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이런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본질을 벗어나 책임자 처벌이라는 수단을 입법 목적으로 둔갑시킨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목적과 수단 뒤바뀐 입법
현장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의 책임을 무리하게 기업 대표에게 씌우다 보니 법리적 모순이 없을 리 없다. 사실상 형법의 성격을 띤 중대재해법은 형법 총론의 원리가 적용되는 책임주의는 물론 인과관계 원칙, 죄형법정주의 등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법조계의 판단이다. 기업 대표의 처벌을 강화해야 안전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태생부터 모순이다. 실제 지난해 산재자는 13만348명으로 법 시행 전인 2021년 12만2713명보다 오히려 늘었다.

산업 현장의 혼란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80%는 준비 부족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 대표가 1인 다역을 하는 중소기업의 속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는 구속되고, 그 즉시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내몰린다.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로펌업계는 쇄도하는 중대재해 컨설팅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업들은 절박한 마음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판례도 드문 만큼 부실한 자문일 수밖에 없다.
기업가정신 위축될 듯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죄수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참가자 24명을 죄수와 간수로 나눈 뒤 행위를 관찰했으나, 5일 만에 강제 종료됐다. 간수는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죄수들은 자기 비하적인 심리적 충격을 받는 등 비윤리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서다. 개인이 다른 역할 기대에 직면하는 ‘역할 갈등’ 상황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칼끝이 향하는 기업 대표의 위기감도 이와 비슷하다. 기업인인 동시에 예비 범죄자라는 굴레로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기업들은 2년 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와 여야 정치권도 이를 둘러싼 공방이 첨예하다. 과연 유예가 능사일까. 재해 예방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기업인 처벌이라는 사후약방문에 초점이 맞춰진 중대재해법은 이참에 폐기하는 것이 옳다. 근로자의 안전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원점부터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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