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복했지만…사랑한 아내 마음 못 얻은 佛 전쟁 영웅

입력 2023-12-03 18:21   수정 2023-12-04 00:54

“나는 진흙탕에서 프랑스의 왕관을 되찾았고, 내 칼끝에서 그것을 씻었다. 이제 국민의 뜻에 따라 내 머리에 쓴다.”

1804년 12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교황을 파리로 데려와 대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이 기름 붓는 의식을 끝내자 나폴레옹은 벌떡 일어나 직접 왕관을 썼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이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7)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는 6일 개봉하는 영화 ‘나폴레옹’은 명화 속 장면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영화 ‘조커’(2019)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을 연기했고,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했다. 둘이 호흡을 맞춘 것은 ‘글래디에이터’(2000) 이후 23년 만이다.

나폴레옹의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근대 국민국가의 기초를 다진 위대한 리더이자 종신 집권을 꾀하며 혁명 정신을 퇴보시킨 독재자로 꼽힌다. 뛰어난 전술로 유럽을 호령한 전쟁 영웅이지만, 동시에 300만여 명의 프랑스 군인을 사지로 내몰았다. 아내 조제핀에게 보낸 열렬한 애정 공세에도 그의 외도를 막지 못한 비운의 사내이기도 하다.

1977년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프랑스군 장교의 결투를 담은 ‘결투자들’로 데뷔한 스콧은 “나폴레옹의 생애는 곧 현대사의 시작”이라며 “나폴레옹은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가 숱한 히트작을 선보이면서도 줄곧 나폴레옹의 생애를 그린 영화를 숙원 사업으로 꼽아온 이유다.

스콧은 그의 복잡다단한 삶을 세 가지 축에 집중해 풀어낸다. 격변하던 18~19세기 유럽의 사회상, 군사 지도자로서 나폴레옹의 면모, 아내 조제핀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다. “프랑스, 군대, 조제핀”이라고 한 나폴레옹의 유언처럼 말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인상적이다. 실전에서 갈팡질팡하는 신출내기 포병 장교 시절부터 무덤덤한 표정으로 발포 명령을 내리는 황제의 모습까지 두루 소화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기를 틈타 황제가 되려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다가도, 조제핀의 유혹에 무너져내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버네사 커비가 열연한 조제핀의 존재감이 입체감을 더한다. “나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라는 남편의 고백을 끌어낼 정도로 존재감을 뽐낸다. 끝내 나폴레옹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남편과 조국을 위해 넘치는 에너지를 감춰야 했던 복잡한 인물의 내면을 커비는 세밀하게 드러냈다.

역사 영화, 특히 전쟁 장르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스콧의 작품인 만큼 장대하고 다채로운 전쟁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툴롱 전투와 이집트 원정, 워털루 전투 등 나폴레옹이 지휘한 6개 주요 전투를 묘사한다. 화포를 활용한 공성전부터 나폴레옹 전술을 상징하는 전초전과 소규모 사단 편제를 통한 난전까지 다양하다.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선 꽁꽁 언 강물 위로 적을 유인한 나폴레옹의 영리한 전술을 돋보이게 드러낸다.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워털루 전투에선 프랑스 기마병을 궤멸시킨 영국군의 네모반듯한 방진 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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