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FUN UP!…성수동은 365일 ‘팝업 성수기’

입력 2023-12-14 19:07   수정 2023-12-15 02:34


명품 브랜드 디올 매장 바로 앞에 섬유 원단을 파는 허름한 피혁 가게가 있는 곳. 샤넬의 향기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 옆에 자동차 정비소가 자리잡은 곳.

서울 성수동,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독특한 동네다. 10여 년 전만 해도 수도권 외곽에서나 볼 법한 구닥다리 업체들이 몰려있던 성수동은 이제 유행에 민감한 젊은 남녀로 가득 찬 ‘핫 플레이스’가 됐다. 이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잠깐 문을 여는 팝업스토어만 매주 40~70개에 달한다. 명품 브랜드부터 새로 문을 연 스타트업까지 업종불문이다.

변신의 출발점은 10년 전 공장지대에 뜬금없이 들어선 갤러리 카페 ‘대림창고’였다. 버려진 공장 건물에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놓더니, 버젓이 카페 간판을 달았다. 그 매력을 사람들이 알아봤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때마침 ‘재생’이 글로벌 키워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건뿐 아니라 도시도 그랬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영국 런던 배터시 등 세계 전역에서 구도심을 찾는 발길이 확 늘었다. 그 바람을 성수동도 탔다. 이 덕분에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별명을 얻었다.


최첨단과 구닥다리가 뒤섞인 묘한 동네는 그렇게 ‘피리 부는 소년’처럼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자 압구정동, 한남동 등 부유층이 많이 사는 깨끗하고 잘 정비된 동네만 찾던 콧대 높은 브랜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명 브랜드와 특색 있는 레스토랑,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지금의 ‘연무장길’이 완성됐고, 이후 성수동 전체로 뻗어나갔다.

매일 얼굴을 갈아입는 곳. 그래서 지겨울 틈이 없는 동네. 수많은 메뉴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넷플릭스 같은 성수동은 언제나 ‘성수기’다.
도시 한 복판서 배 타고 식당으로? 여기선 다 됩니다
성수동 타짜가 꼽은 ‘핫플’

“서울 성수동 매장은 더 이상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에요. ‘경험’을 파는 곳입니다.”

세계 최대 부동산 투자·임대 자문기업인 쿠시먼&웨이크필드에서도 ‘타짜’로 불리는 김성순 임차자문본부장(전무)은 ‘2023년의 성수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공간’을 파는 직업 특성상 10년 넘게 성수동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이곳에선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하는 일이 ‘본업’이 된다. 자기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성수동 점포들이 쓰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 기존 공식의 뒤집는 ‘파격’과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 방문할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빠른 변화’가 그것이다. 김 전무와 함께 이들 키워드에 딱 들어맞는 점포들을 들렀다.

짓다 만거 아니죠? 고정관념 깬 ‘탬버린즈’

2023년의 성수동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파격’이다. 아무도 안 찾는 공장터였던 성수동을 ‘멋쟁이들의 놀이터’로 변신시킨 동력도 파격이었다. 이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매장이 향수 브랜드 탬버린즈다.

연무장길의 끝자락, 디올 팝업스토어 맞은편에 자리잡은 그 점포다. 두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왜 이 건물과 파격이란 단어가 어울리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분명 3층짜리 건물인데 2층과 3층은 텅 빈 채 내버려둬서다. 콘크리트 뼈대만 있을 뿐 벽도 없고, 바닥도 없다. 한창 공사 중인 건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진짜 매장은 지하 1층뿐이다.

탬버린즈는 왜 성수동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놀려둘까. 탬버린즈를 개발한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성수동 매장을 준비하면서 기존 부동산 공식을 깨뜨리는 걸 콘셉트로 잡았다. 점포를 판매할 물건으로 꽉 채우는 것보다 오히려 비워두는 게 브랜드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케팅업계에선 탬버린즈의 ‘파격 전략’에 대해 성공적으로 평가한다. 2~3층을 비운 데 따른 임대료 이상을 ‘바이럴 마케팅’으로 뽑아냈다는 이유에서다. 이 건물은 단숨에 성수동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주말에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매장 안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지하 1층은 향수를 판매하는 스토어라기보다 전시장에 가깝다. 매장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이들은 각자의 SNS에 자발적으로 탬버린즈를 홍보한다. 파격은 이렇게 돈이 된다.

태국 방콕을 통째 옮겨둔 ‘살라댕템플’

레스토랑 경쟁력을 가르는 첫 번째 요인은 누가 뭐래도 ‘맛’이지만, 성수동에선 조금 다르다. 전통의 맛집보다 특별한 경험으로 승부하는 식당에 더 긴 줄이 선다. 태국 음식점 살라댕템플이 딱 그런 식당이다.

연무장길에서 뚝섬역 쪽으로 15분 정도 걷다 보면 자동차 정비소들이 줄지어 선 낯선 성수동이 나온다. 차량 도색작업을 허가받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지역이라 오래전부터 정비소 천국이 됐다. 정비를 기다리는 차량을 위해 자연스럽게 주차장들이 주변에 들어섰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성수동 변신 과정에서 정비소가 하나둘 떠나면서 주차장들도 ‘헛장사’를 하게 됐다.

살라댕템플은 그렇게 비어 있는 주차장을 식당으로 만들었다. 이 식당의 경쟁력은 유명 셰프도, 독특한 메뉴도 아니다. ‘특별한 경험’ 하나로 매일 만석이다. 식당 입구와 주차장 사이에 연못을 만들어 배를 타야 식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 하나로 성수동의 ‘챔피언 식당’이 됐다. 작은 배로 태국 방콕의 짜오프라야강을 오가는 모습을 재현했다. 김 전무는 “소비자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살라댕템플을 찾고 SNS로 홍보까지 해주는 건 다른 데선 경험할 수 없는 이야깃거리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건 NO, 두 달마다 변신하는 ‘LCDC’

고객에게 식상할 겨를을 주지 않는 ‘빠른 변화’도 성수동의 키워드 중 하나다. 살라댕템플에서 골목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문화공간 LCDC를 찾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 LCDC도 텅 빈 주차장 부지에 세운 3층짜리 복합문화공간이다.

여러 점포를 둘러보는 재미, 그리고 여러 상품을 비교해보는 즐거움만이 LCDC를 ‘핫 플레이스’로 만든 건 아니다. 입구에 있는 포토존이 아니었다면 이 공간이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언제나 꽉 찰 수는 없었을 터다.

LCDC는 지금 이 공간을 크리스마스 기차 대합실로 꾸몄다. 내부는 물론 건물 외부도 기차처럼 만들었고, 주변에는 대합실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을 비치했다. 문을 열어주는 직원도 그 옛날 기차 승무원의 복장을 하고 있다. 이 공간은 두 달 간격으로 콘셉트를 바꾼다. 그러니 고객들은 이곳에 올 때마다 새롭다.

포토존 공간은 다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협소하고, 사진을 찍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은 없다. 아무거나 팔아도 ‘대박’일 텐데, 그냥 비워 놓는다. 대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은 고객들은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사고, 커피도 마시면서 ‘보답’한다. 방문한 날에도 ‘가짜 기차’에 탑승하려는 사람들로 포토존은 가득 찼고, 이들은 어김없이 매장 안에 들어갔다.

최지희 기자/사진=최혁 기자·LCDC SEOUL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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