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도 없는데"…학교용지, 수년째 방치 끝에 이런 일까지

입력 2023-12-28 08:54   수정 2023-12-28 09:14

#. 경기도 안양시 재개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씨는 창문을 열면 답답하기만 하다. 당초 학교가 들어설 예정지에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어서다. 학생들이 줄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지만,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아파트로 추진해 동간계획이 다시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김씨는 "동호수 추첨 때 학교 앞이라고 조합원들의 축하까지 받았다"며 "이제는 하루하루 막혀가는 풍경에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 아파트는 초등학교 부지를 아파트로 바꾸고, 기존의 학교에 입주민 자녀들을 배정하고 있다. 분양 이후에 학교부지를 아파트로 변경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기존 학교는 일부 학년은 9반까지 있을 정도지만, 6학년은 5개반만 있을 정도로 편차가 큰 편이다. 신설학교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새로 지을 정도의 학생수는 아닌 셈이다. 입주민인 박모씨는 "고학년이 되면 학군, 학원을 따라 평촌의 구축 아파트로 들어가는 분위기"라며 "학교용지를 마냥 방치하면 그것도 흉물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방치된 학교용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도시개발계획에서 '학교용지'가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신설학교를 추진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학령인구 및 출생인구 감소 등을 감안하면 신설학교의 효용성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안양 아파트는 조합이 신속하게 신규 아파트를 추진한 경우지만, 수도권의 일부 아파트 주변은 학교용지가 방치되고 있다. 방치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지역 내에서는 수풀이 무성하거나 펜스만 처져 있는 스산한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실제 경기도에 방치되고 있는 미사용 학교용지가 넘쳐나고 있다. 감사원의 시·도교육청 공유재산 관리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 경기도미사용 학교용지는 무려 361개, 부지면적만 482만여㎡에 달한다. 이는 전국 미사용 학교용지 부지면적(812개, 1074만 2211㎡규모)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학교 설립계획이 없는 학교 부지가 방치되면서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조합이나 사업자들이 학교용지를 처분하지 못하면서 개발이 늦어지거나 관련 사업이 멈춘 곳까지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식사1지구에 지어진 복합생활체육시설이 대표적이다. 이 곳은 조합의 공사대금 미납으로 공정률 98% 수준에서 1년째 준공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조합은 미사용 학교시설 부지(초등학교 및 유치원 부지)를 매각해 공사대금을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고양시의 학교용지 용도 폐지를 미루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학교용지는 도시계획시설인 만큼 다른 방법으로 매각하려면 학교용도를 폐지 한 후 매각이 가능하다.

당초 고양교육지원청은 식사1지구가 7000여 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만큼 인구 유발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학교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다가 2021년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 등의 이유로 ‘신설 초등학교 및 유치원 설립 요인이 없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학교용지가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미사용 학교용지에 대해 해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양시에 절차 이행을 미루면서 관련 사업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공정률 98% 수준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지만, 45억여원에 달하는 공사대금을 미납해 공사가 중단됐다"며 "복합생활체육시설은 학교용지 매각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복합생활체육시설은 식사동 산 135-1번지 일원에 지하 2층~지상 1층, 연면적 9014㎡ 규모로 지어진다. 수영장과 볼링장, 실외테니스장 및 각종 행사 공간 등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로선 준공이 요원한 상태다.
처분도 어려워 조합·사업자들 '곤란'…서울시는 제도개선
뿐만 아니다. 경기도 화성시 능동에서도 학교용지가 방치되고 있다. 2015년 화성시 능동 682-1 일원의 능동1초 부지는 4차례나 학교 중앙투자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7년 마지막 중앙투자심사에서 병점지역을 포함한 학교 배치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벌말초나 진안중 이전 추진에 이어 지난 9월에는 병점초 이전을 추진했지만 지역 사회 반발로 무산된 상황이다. 화성오산교육지원청은 능동1초 학교 용지 활용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용지는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300가구 이상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개발사업시행자가 시도교육감과 협의해 적정 규모의 학교 용지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개발의 지연 또는 일부 취소되거나 개발사업 전 예측한 학생수 보다 적은 학생이 발생하는 어긋난 수요예측 등의 경우 미사용 학교용지로 남게 된다.

이는 학교(초, 중, 고)신설에 대한 중앙투자심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교육부의 초·중·고등학교 신설 관련 투자심사 결과를 살펴보면 최근 5년간(2016년~2020년 7월 23일) 평균 승인율은 51.7%(총 656건 중 339건)에 불과했다. 학교설립 계획 중 절반가량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거나 설립이 취소되고 있다. 미승인된 건수(317건) 가운데 74%는 학생수 부족 및 인근 학교로 배치 가능 이유 때문으로 나타났다.

학교시설 용지 해제 요청에 따른 비율도 낮다. 시도교육청의 미사용 용지 해제 요청 검토 실적을 확인한 결과 △2017년 58건 △2018년 29건 △2019년 25건 △2020년(7월) 11건 등으로 점차 하락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해제요청비율도 32.5%에 지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교육당국의 주먹구구식의 계획으로 전국적으로 학교용지가 넘쳐나고 있다"며 "시행사업자나 조합 등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용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고, 용도해제 및 매각도 쉽지 않아 토지의 효율성을 저하하는 만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승인권자인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행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온 ‘학교 용지’를 사업 초기 단계에 설정할 수 없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다. 사업 막바지에 학교 건립 결정이 번복돼 사업이 지연되고 조합 내 갈등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학교시설 결정 방안 개선안’을 통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 등을 통과해 학교 설치가 확정된 경우에만 정비계획상 ‘학교 용지’로 결정하기로 했다.

교육청이 자체 수요예측 등을 거쳐 학교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개발사업 초기 특정 규모의 땅을 학교 용지로 우선 분류했지만, 앞으로는 ‘공공공지’로 놔둔 뒤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한 이후 학교 용지로 변경하겠다는 얘기다. 기존에 학교 용지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사업장도 사안별로 판단해 공공공지 변경을 검토할 방침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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