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치인 테러

입력 2024-01-02 18:02   수정 2024-01-03 00:45

한국 정치사에서 테러가 가장 난무한 때는 좌우가 극한으로 대립한 ‘해방 공간’이었다. 1945년 12월 동아일보사 사장을 지낸 우파 정치인 고하 송진우 자택 암살 사건에 이어 1947년 4월 중도좌파인 근로인민당 당수 몽양 여운형 혜화동로터리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여운형은 해방 후 2년 동안 무려 10차례나 피습됐다. 같은 해 12월엔 한국민주당 핵심 설산 장덕수가, 1949년 6월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가 저격당해 세상을 떠났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치 깡패를 동원하거나 정보기관이 개입한 야당 정치인 테러 사건이 심심찮게 있었다. 자유당 정권 때인 1957년 이정재, 유지광 등 정치 깡패들이 범야권의 장충단 시국 강연회에서 폭력을 행사해 집회를 파탄 냈다. 1969년 6월에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 승용차 초산 테러 사건, 1973년 8월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4월엔 안기부가 배후 조종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테러인 ‘용팔이 사건’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잠잠하던 정치인 테러가 다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피습 사건이었다. 우측 뺨에 11㎝의 자창을 입은 박 대표가 봉합수술 후 깨어나 “대전은요?”라고 했던 것이 이때다.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 토론회 폭행 사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폭행 사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쇠망치 테러 사건 등이 잇따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어제 부산에서 흉기로 목 부위를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 국내 정치인 중 팬덤이 가장 두터운 이 대표는 반대자들로부터 종종 봉변도 겪었다. 2022년 5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유세 중 치킨 뼈다귀 그릇 투척 사건을 당했고, 지난해 8월엔 살해 협박 편지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차원이 다른 중대 테러 범죄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 방식은 한 가지뿐이다. 린지 호일 영국 하원의장의 말대로 “살인도 협박도 아닌, 투표소”에서 해결해야 한다. 테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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