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100년간 꿈꿔온 '핵융합' 현실로…AI가 인공태양 띄운다

입력 2024-01-02 18:39   수정 2024-01-10 15:42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인간에게 불을 회양나무 가지에 감춰 전해준 거신(巨神)이다. ‘먼저’를 뜻하는 접두사 ‘pro-’에 ‘생각하는 이’를 뜻하는 명사 ‘metheus’가 합쳐져 ‘선지자(先知者)’를 의미한다. 인간은 불을 도구로 길들이며 문명을 건설했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을 또 다른 불을 선물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인공지능(AI)이다.

지난달 27일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어실 화면에 ‘디(D)’ 모양 붉은 형체가 일렁였다. 한국형 핵융합장치 ‘KSTAR’ 내부 섭씨 1억 도 플라즈마 단면이다. 플라즈마 입자는 ㎥당 1000경 개가 넘는다. 핵융합연은 KSTAR를 디지털 트윈으로 복제했다. 슈퍼컴퓨터가 플라즈마 입자 난류를 계산했다. AI는 디지털 트윈 속 플라즈마가 곧 터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자기장에 변화를 줘 플라즈마를 안정시키는 법을 찾았다. 연구진은 다음번 실제 KSTAR 운행에 이를 적용했다.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연구부장은 “AI가 핵융합에 필요한 1억 도 플라즈마의 300초 유지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고 했다.

핵융합은 ‘꿈의 에너지’다.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와 같은 핵융합을 활용하면 중수소 100㎏으로 석탄 300만t을 태운 것 같은 에너지를 낸다. 현재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 발전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원자폭탄(핵분열)보다 수소폭탄(핵융합)이 100배 이상 강력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더욱이 핵융합은 방사성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핵융합 원리가 발견된 건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억 도 이상 초고온 또는 대기압의 30억 배가 넘는 초고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핵융합을 구현하기 위해선 초대형 설비와 막대한 자본이 요구됐다.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프랑스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는 축구장 60개 크기(약 60만㎡)다. 7조원 이상 투자됐다.

AI의 출현은 핵융합 연구개발(R&D)의 속도를 크게 높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가상현실에서 반복해 최적 결과물을 찾기 때문이다. 이경수 전 ITER 사무차장은 “국제 과학계는 KSTAR가 개발한 AI를 ITER 제어에 활용할 계획”이라며 “막연했던 상상이 현실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국립점화시설(NIF)도 AI를 핵융합에 적용 중이다. NIF는 2009년 4조6500억원을 투자해 192개 초강력 레이저를 설치했다. 좁쌀 크기 수소 캡슐에 레이저를 집중해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수준의 초고압을 가한다. 단 한 개의 레이저 각도라도 미세하게 틀어지면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쓰는 전력은 500TW(테라와트)다. 미국 전역 전력 소모량의 1000배다. 레이저를 쏘는 실험 횟수는 1년에 10번 안팎에 불과하다.

이에 NIF는 50억 개가 넘는 레이저 내폭 이미지를 AI에 학습시켰다. 캡슐의 두께, 레이저 발사 각도를 바꿨다. 캡슐 불안전성 계산 980억 개를 바탕으로 NIF는 2022년 12월 ‘순(純)에너지’ 생산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핵융합 연구 사상 최초로 투입 에너지보다 산출 에너지가 많아졌다. NIF는 실험 결과를 AI에 다시 학습시켜 에너지 생산량을 늘린다.

핵융합은 AI를 활용한 과학 연구의 상징이다. 초고온 초고압 환경에서 간접 추론 방식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이다. 신기욱 핵융합연 박사는 “AI를 활용해 핵융합에 성공한다면 데이터 잡음이 적고 측정 및 계산이 쉬운 다른 과학 R&D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을 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는 핵융합에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샘 올트먼(오픈AI),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등이 핵융합에 투자한 금액은 누적 62억달러(약 7조8000억원)가 넘는다.

대전=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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